[커버스토리]잡았다, 포켓몬 고…열렸다, 136兆 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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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절반은 빨갛게, 나머지 반은 하얗게 칠해진 단단한 공.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스마트폰 안에서 던지고 있는 ‘몬스터 볼’이다. 1995년 닌텐도의 게임 시리즈로 처음 탄생한 포켓몬이 20년이 지난 올해 증강현실(AR)이라는 첨단 기술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AR 게임 ‘포켓몬 고’(사진)는 6일(현지 시간)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에서 서비스된 직후 바로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에선 정식으로 서비스되지 않았지만 이미 100만 명 이상이 내려받았고, 강원 속초·양양과 울산 등 일부 실행 가능 지역에선 ‘포켓몬 고 순례자’들로 진풍경이 빚어졌다.

16일 유럽 26개국으로 서비스가 확대된 데 이어 22일에는 일본에서도 포켓몬 고가 정식으로 서비스되면서 한국 게임 유저들이 체감하는 열기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24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의 쇼핑 1번지 긴자(銀座)의 번화가에서 포켓몬 고 게임을 하고 있던 직장인 다카노 마이(高野麻衣·27) 씨는 “하루 종일 친구와 시내를 돌면서 포켓몬을 잡을 계획이다”며 웃었다.

시장조사기관 디지캐피털에 따르면 글로벌 AR 시장 매출 규모는 2020년에 1200억 달러(약 136조 원)까지 늘어 가상현실(VR) 시장(300억 달러)의 4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VR에 밀려 조명 받지 못했던 AR 세계를 포켓몬 고가 열어젖힌 셈이다.


▼ ‘포켓몬 성지’ 떠오른 속초-울산… 방문객 10배 뛰며 ‘GO’ ▼


“여기 있다.” “또 잡았다.” “벌써 50마리 넘었어.”

25일 오후 강원 속초시 엑스포광장에는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에도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포켓몬 사냥에 나선 유저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걸어 다니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는 물론이고 전동휠과 미니오토바이까지 등장했다. 엑스포광장의 임대업자들은 발 빠르게 이 같은 이동수단에 휴대전화 거치대를 설치했다.

속초, 식지 않는 포켓몬 고 ‘열기’

‘포켓몬 고’ 태초 성지인 속초의 포켓몬 고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평일인데도 서울발 속초행 고속버스는 거의 매진이고 포켓몬 출몰 지역으로 소문난 엑스포공원과 속초해수욕장, 속초관광수산시장, 대포항 등은 인파로 북적였다.

서울 강남과 속초를 운행하는 동부고속 운전기사 백재호 씨(58)는 “빈자리 없이 꽉 차서 왔다. 예전에 비해 청소년이나 젊은층이 많아 포켓몬 고 열기를 실감한다”며 “버스가 포켓몬 고 가능 지역으로 알려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들어서면서부터 승객들이 포켓몬을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초등생 자녀들과 함께 왔다는 김영훈 씨(41·서울)는 “피서를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포켓몬 고 게임을 원해서 속초로 오게 됐다”며 “피서도 하고 게임도 즐기고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포켓몬 고 덕분에 이병선 속초시장도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이 시장은 만화 포켓몬에 나오는 오 박사를 패러디한 이 박사 복장으로 주말과 휴일 오후 1시간씩 엑스포공원에 상주하는데 유저와 관광객들이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설 정도다.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해외 언론까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벌써 CNN, NHK, 알자지라 방송까지 탔다. 미국과 아프리카에 사는 지인들이 방송을 보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울산과 부산은 희비쌍곡선

“속초까지 안 가도 되니 정말 좋아요.”

부산에 사는 직장인 백모 씨(30)는 친구 3명과 22일 오후 울산 울주군의 간절곶으로 향했다. 백 씨 일행은 이달 초부터 포켓몬 고 게임을 하기 위해 속초로 가려고 몇 번 시도하다 거리가 멀어 참았다. 그는 “일본에서 서비스가 되면 부산이나 울산에서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로 꾹 참았는데 정말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이들은 이날 간절곶에서 10시간 정도 포켓몬을 사냥하고 돌아왔다.

울산이 속초, 울릉도에 이어 ‘포켓몬 고 성지’로 떠올랐다. 포켓몬 고가 일본에서 공식 출시된 22일부터 울산 간절곶 일대에는 평소보다 10배가량 많은 방문객이 몰리고 있다. 갑작스러운 관광 특수에 울산시는 25일 포켓몬 고 서비스 지원을 위한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관광 안전 환경 행정 언론 등 5개 분야로 구성된 ‘지원 상황실’을 설치했다.

유저들을 위해 간절곶 일대에 공공 와이파이존과 휴대전화 충전 시설을 제공하고 더위를 피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햇볕 가림막과 음수대 등도 갖추기로 했다. 또 간절곶으로 이어지는 울산시티투어의 ‘해안탐방 관광코스’를 적극 홍보하기로 했다.

울산과 달리 부산은 울상이다. 부산과 같은 서비스 권역으로 묶인 쓰시마 섬(대마도)이 갑자기 서비스 지역에서 제외돼 게임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19일 콘텐츠협력팀장 등 공무원 3명을 속초로 파견해 포켓몬 고 준비 상황을 벤치마킹하기도 했지만 허사가 됐다.

하지만 부산 해운대그랜드호텔은 아예 포켓몬코리아와 제휴를 맺고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15층 바닷가 전망 객실 3개를 ‘포켓몬 콘셉트룸’으로 꾸미고 피카추 치즈버거, 피카추 샌드위치와 케이크 등을 판매 중이다. 이 호텔 관계자는 “부산에서 게임 실행이 안 돼 아쉽지만 워낙 포켓몬 고가 열풍이어서 그런지 콘셉트룸 예약 문의는 다른 객실에 비해 훨씬 많다”고 말했다.

포켓몬 고 마케팅, 저작권에 발목 잡힐라

본격적인 피서철과 포켓몬 고 특수까지 겹친 속초시는 표정 관리를 해야 할 판이다. 게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 부산에서 게임 실행이 안 되기 때문이다. 울산에서는 간절곶 등 일부 지역에만 한정돼 도심 전체에서 게임이 가능한 속초와는 경쟁력에 차이가 있다.

포켓몬 고 유저들 덕분에 속초지역 상권은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포켓몬 출몰지로 소문난 곳의 편의점들은 ‘대박’이 났다. 더위에 지친 유저들 덕분에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은 불티나게 팔리고 비가 오면 우산과 우비가 동나기 일쑤다. 엑스포광장 옆 GS25의 아르바이트생 이술훈 씨(20)는 “평소에 비해 손님이 3, 4배는 많은 것 같다”며 “손님이 끊이지 않아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속초시는 유저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와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포켓몬 출몰 지역 등이 담긴 지도와 와이파이 지도를 올렸다. 게임 인증샷을 찍어 본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천연비누와 쿨타월 등을 선물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또 시립박물관은 포켓몬을 30마리 이상 포획한 방문객에게 다음 달 8일까지 무료 입장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포켓몬 고를 활용하려는 속초시와 지역 상인들은 저작권에 발목을 잡혔다. 25일 속초시를 방문한 포켓몬코리아 관계자로부터 저작권료 지불 없이는 ‘포켓몬’ 용어와 캐릭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포켓몬 고 안내 전단 등을 배포한 속초시는 난감한 입장이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까 봐 홈페이지에는 ‘포켓몬 고’를 우리말로 바꾼 ‘주머니괴물 달려’라는 우스꽝스러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속초시장은 “속초가 포켓몬 고 선점 효과를 장기적으로 누리기 위해 업체와 포켓몬 캐릭터 활용 문제를 협의하고 일본 요코하마의 피카추 축제도 벤치마킹할 계획”이라며 “우선은 지금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게임을 하고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편의와 안전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속초=이인모 imlee@donga.com/부산=강성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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