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불임 공포에 떠는 가임기 암환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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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2만명 항암-방사선 치료… 기형아 우려에 출산 포기 많아
난자 정자 냉동보관이 해결책
난임 부부 체외시술 지원하듯 암환자에도 건보 혜택 줘야

이모 씨(29·여)는 지난해 2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진료실 문을 나설 때는 덤덤했다. 그런데 다섯 살 정도 된 아이가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걷는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아이를 갖지 못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난 이제 엄마가 될 수 없는 거구나….’ 암 수술 걱정보다 ‘불임(不姙)’이 될 수 있다는 상심이 더 컸다.

하지만 이 씨는 “항암치료 전에 난자를 얼려서 보관해두면 나중에 정상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의료진의 권유에 희망을 가졌다. 항암치료 전에 난자를 보관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완쾌되자고 다짐한 덕분인지 지난해 11월 항암치료를 마친 뒤 건강을 되찾고 있다.

젊은 암 환자는 방사선 치료를 받거나 항암제를 투약하면 난소나 고환의 생식세포가 손상돼 불임이 될 수 있다. 어렵게 아이를 갖더라도 기형아로 태어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14일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임기(15∼39세) 암 환자 13만8073명 중 1만5521명이 항암제를 투약했고 5687명이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불임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항암치료를 받았더라도 항암치료 전 난자나 정자를 채취해 냉동 보관했다가 완치 후 체외에서 수정해 자궁에 이식하면 정상적으로 출산할 수 있다. 이런 시술의 성공률은 일반 난임 부부 사이에서 30% 수준인데, 암 완치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경아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암 때문에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은 게 아니라면 대체로 체외수정 성공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자나 정자를 채취하거나 보관하는 비용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채취 뒤 5년간 보관할 때 드는 비용은 난자가 약 250만∼400만 원, 정자가 100만∼200만 원 수준이다. 이는 전부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이 되지 않으니 이를 권유하는 절차도 따로 없다. A 씨(31·여)는 3년 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당시엔 난자를 얼려두면 좋다는 조언을 듣지 못했다. 최근 A 씨는 임신 성공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라는 진단을 받고 크게 실망하고 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저출산 해소를 위해 난임 부부의 체외수정 시술에 건강보험 혜택을 지원하듯 암 환자의 난자 및 정자 냉동에도 혜택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난임 부부는 체외수정 시술 시 진료비의 30%만 부담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불임 공포#가임기 암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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