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만난 코끼리 ‘도토’는 정말 정준하를 기억 한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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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기억력은 어디까지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아프리카 코끼리 ‘도토’가 3개월 만에 만난 정준하를 기억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과학자들은 코끼리 같은 동물도 여러 번 반복하거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 경우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MBC 제공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아프리카 코끼리 ‘도토’가 3개월 만에 만난 정준하를 기억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과학자들은 코끼리 같은 동물도 여러 번 반복하거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 경우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MBC 제공
“아프지 마 도토, 도토 잠보(안녕).”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정준하는 아프리카 코끼리 ‘도토’에 대한 애정을 담은 노래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그는 올해 초 케냐의 코끼리 고아원에서 도토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뒤 ‘도토 아빠’를 자처했다. 특히 3개월 만에 재회하는 순간에는 도토가 정준하를 기억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면서 시청자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도토는 정말 정준하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

○ 반복 훈련, 오래 기억하기 위한 열쇠

코끼리는 ‘어린 시절 쓰던 물웅덩이를 70년이 지난 뒤에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끼리의 뇌 무게는 5kg으로 사람(1350g)의 4배가 넘는다. 기억에 관여하는 뇌 측두엽의 주름도 사람보다 더 많다. 뇌 주름이 많으면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커져 기억력이 좋을 수 있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김지은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사람이 어릴 때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뇌가 발달하는 단계에 있는 도토가 3개월 전의 만남을 정말 기억하는지는 미지수”라면서도 “여러 번 반복되는 일이나 특별히 감성을 자극한 사건이라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준하가 도토의 코에 바람을 불어 주며 자신의 냄새를 인식시킨 행동은 기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아픈 도토에게 정준하의 행동이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두 청년이 1년 동안 키우다가 야생에 풀어 준 사자의 경우 1년 뒤 주인을 다시 만나자 목을 감싸고 뺨에 얼굴을 비비며 주인을 기억했다는 보고가 있다.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의 경우 기억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복 학습을 시킨다. 서울동물원은 칭찬을 반복하는 ‘긍정적 강화 훈련’을 통해 코끼리에게 특정 행동을 주입한다. 예를 들어 사육사가 막대기를 들고 ‘타깃’이라고 외칠 때 코끼리가 막대기에 이마를 갖다 대면 보상으로 먹이를 주는 식이다. 코끼리 발바닥에 염증이 생겼을 때도 막대기를 철창 틈새에 대고 ‘타깃’을 외쳐 코끼리가 철창 틈새로 발을 내밀게 해 안전하게 치료한다.

코끼리 상처 치료를 담당하는 지인환 사육사는 “칼처럼 뾰족한 도구를 자주 쓰는 탓에 코끼리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돼 있다”며 “말썽 부리는 코끼리에게 엄한 선배 사육사의 목소리를 따라하면 말을 잘 듣는 걸 보면 코끼리의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특정한 물건을 들고 있는 등 주변 정보가 함께 주어지면 동물의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분석도 있다. 여용구 서울대공원 동물병원 수의사는 “빈손으로 동물에게 다가가면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도 치료를 위해 주사기를 들고 가면 도망가 버린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에서 코끼리 상처 치료를 담당하는 지인환 사육사는 칼처럼 뾰족한 도구를 쓰는 탓에 코끼리들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과천=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서울대공원에서 코끼리 상처 치료를 담당하는 지인환 사육사는 칼처럼 뾰족한 도구를 쓰는 탓에 코끼리들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과천=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 뛰어난 기억력은 생존 위한 것

과학자들은 코끼리가 뛰어난 기억력을 지니게 된 이유를 무리의 운명과 관련지어 해석한다. 리처드 번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팀은 코끼리가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부족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07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코끼리는 사냥하는 부족인 마사이족에게는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다른 종족의 경우 창을 휘둘러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코끼리가 마사이족의 냄새뿐 아니라 마사이족 고유의 빨간 옷과 사냥 자세까지 기억해 구별한다는 사실도 밝혀 냈다.

캐런 매콤 영국 서섹스대 교수팀은 2001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리더 코끼리의 기억력이 코끼리 무리의 생존 열쇠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1993년 탄자니아 국립공원에 기록된 코끼리 무리별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늙은 암컷이 이끈 무리의 생존율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거 가뭄에서 살아남은 기억을 갖고 있는 늙은 코끼리가 물과 먹이가 있는 장소로 코끼리들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탄자니아에는 1858∼1961년 극심한 가뭄이 있었는데, 당시 최소 5세였던 코끼리가 35년 넘게 물과 먹이가 있는 장소를 기억하고 있었던 셈이다.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동물은 생존에 필요한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과천=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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