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과 협상하는 법…“모든게 결정되기 전엔 아무 것도 결정된게 아냐”

  • 뉴시스
  • 입력 2019년 2월 20일 09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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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북한 전문가 칼린, 38노스 기고문에서 조언
"북한은 균형과 상호성 중시"

북한과의 협상은 다른 나라들의 협상과 달리 “모든 것이 결정되기 전에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미국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이 19일(현지시간)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 및 협력센터 객원연구원인 칼린은 1974년부터 미 정부에서 북한 문제를 다루면서 25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2002-2006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고위 정책 자문관으로 북한과 여러차례 협상을 이끌었다. 1989-2002년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본부장이었으며 1992-2000년 대북특별대사의 선임자문관으로 북한과 협상에 참여했다. 1971-1989년 중앙정보국(CIA)에 근무할 때 우수분석가상을 수상했다.

다음은 칼린 연구원 기고문의 주요 내용이다.

“(협상에서) 과정이 중시되지 않는 이유는 외부에서 볼때 협상이라는 것이 매번 협상이 끝나야 평가할 수 있는 성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잔루에 남은 사람이 누군지를 말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북한과 협상은 크게 다르다. 정반대다. 협상이 진전될 수 있으려면 ‘모든 것이 결정되기 전에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이런 방식에 큰 장점이 있다. 최종적 구조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볼때 부분은 논리적이고 실용적이며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나아가 양측간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주고받기의 균형을 평가할 수 있는 전체 구조가 완성되기 전에는 어느 쪽도 약속할 수 없는 것이다.

곧 열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이같은 방식이 적용될 것인지, 즉 정상회담에서 결정하고 실무 협상이 진행되게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여론의 관심과 정치적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는 북미 정상회담은 회담 중간에 평가를 하기가 더욱 어려우며 따라서 중간 과정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북한과 협상은 힘들고 거칠며 불쾌한 것으로 종종 묘사된다. 실제 북한과 협상해본 사람들로부터 나온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협상 과정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북한의 협상 초기 입장에는 무서울 정도로 온갖 속임수가 담겨 있다.

북한은 협상 초기에 ‘안된다’는 발언을 수없이 되풀이해서 협상이 시간 낭비라고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회담 말미에 이르면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신중하던 자세가 말미에 가면 크게 변한다. 1993년 사용 후 연료봉(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과 경수로 건설을 맞바꾸자고 제안한 것처럼 말이다.

김정은 역시 중요한 일련의 양보를 협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제시(예를 들어 핵과 미사일 실험 전면 중단, 영변을 협상 대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와 비슷한 접근법을 취했다.

북한은 분위기를 중시한다. 보통 그들은 협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머를 사용하면서 분위기가 차분하고 전문적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들은 상대방도 똑같이 처신하기를 기대한다.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예외적이라는 뜻이다. 때때로 맞대응 시범도 보인다. ‘미국인이 노트북을 쾅닫고 방을 떠난다면 우리도 그래야만 한다’는 식이다.

북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들을 가지고 논다고 느낄 때 당황하면서 방어적이 된다. 그들은 미국 사람들이 인식조차 못하면서 쉽게 범하는 일들에 매우 민감하다. 양측이 충분히 익숙해지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런 민감한 태도가 사라지는 법은 없다.

북한 협상가들은 종종 작은 문제에서 조금씩 양보하다가 중요한 이슈에서 막판에 큰 양보를 얻어내려고 한다. 그들이 큰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협상 과정의 초기에 세게 나오거나 뒤에 전술적으로 빠져나오기 힘들게 하는 막다른 입장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협상을 서두르는 것은 위험하다. 해법은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야만 떠오른다.북한이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눈에 보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타결이 임박했을 때 방어하거나 포기하기 쉬운 것을 가리기 위한 수사를 늘어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북한과 협상할 때 명심해야할 것은 외교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관점과 조건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북한 협상가들은 신중하게 협상을 진행하며 종종 우회한다. 동의를 받아내기까지의 길은 직선적이지 않다. 기존 입장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유연성을 발휘하려고 하는 경우 ‘조건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을 주의깊게 듣는게 중요하다. 기존 요구가 충족됐을 때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는 식으로 챙길 것은 챙긴 뒤 추가로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진전에는 진전으로 양보에는 양보로 대응한다. 그들은 협상의 결과로 나오는 모든 문서에서 균형과 상호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네가 문제를 일으켰으니 네가 해결해라’는 식의 미국 방식은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한다.

미국인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협상이 빠르게 진전되길 원한다. 나와 상대방 모두 협상에 진지하며 국내 정치적 압박을 받는다고 믿으면서 협상의 전제 조건부터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전제조건으로 제시되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전제조건을 강요한다면 그들도 전제조건을 제시한다. 그들은 이 전제조건이 진지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향기로운 비단 가방에 비린내나는 물고기를 포장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전제조건들은 북한의 냄새 검증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위의 설명이 적용될 수 있을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두 지도자 모두 참고서를 제쳐놓고 본능과 가능성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신하들과 고문들이 왕과 함께 일하고 있고 수백년전부터 제왕과 대통령은 그들을 활용할 줄 알았다.

하노이 회담이 이틀에 걸쳐 열리기 때문에 첫날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잘못을 보완할 기회가 있다. 전문가들은 실무협상이 잘 진행돼 순조롭게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북한은 정반대다.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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