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날인데 눈물이…” 美뉴욕주 의회, '3·1운동의 날' 결의안 채택되던 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6일 15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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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안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Aye·찬성)’라고 말해주세요.”
“아이”
“반대는요?”
“결의안이 채택됐습니다.”


15일(현지시간) 오전 11시 15분경 미국 뉴욕 주 올버니 상원 회의장. 뉴욕 주에서 올해 3월1일을 한국의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이 상원의원 63명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2시간 여 뒤 하원에서도 낭보가 들렸다. 150명의 하원의원 모두가 찬성해 ‘3·1운동의 날’ 결의안이 채택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의안 채택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의사당을 찾은 국회 한미동맹 강화사절단의 박영선·김경협·표창원(더불어민주당), 함진규(자유한국당), 이동섭(바른미래당) 의원과 뉴욕주한인회 관계자 등은 “대한민국 만세”, “삼일절 만세”, “유관순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

“36년간 압박받던 조선민족이 8월이라 15일에 해방되었네(중략) 우리 조선 나라를 세워주소서♬”

새벽 5시 동료 한인들과 단체버스를 타고 의사당을 찾은 박정자 할머니(88·뉴욕 시 퀸즈)는 결의안 통과 소식을 듣고 1945년 해방 때 배운 노래를 열창해 큰 박수를 받았다. 박 할머니는 “황해도에 살면서 14살 때 배운 노래”라며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인데 눈물이 앞을 가려서 노래를 못하겠다”고 눈물을 훔쳤다.

박 할머니 등 한인 30여 명은 이날 뉴욕 시에서 단체버스를 타고 의사당을 찾아 결의안 통과에 힘을 보탰다. 버스 안에선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됐다. 한 고령의 한인 참석자는 장거리 여행으로 탈진해 의사당 앞에서 잠시 주저 앉기도 했지만, 역사적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뉴욕 주의회에서 3·1운동의 날 결의안이 채택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워싱턴에서 반대 로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뉴욕 주의원들은 100년 전 3·1 운동과 유관순 열사의 희생 정신이 보여준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미국 사회가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날 하원에서 결의안을 발의한 한인 1.5세 론 김 하원의원은 “유관순의 희생과 용기는 2000만 명의 한국민 중 200만 명 이상이 궐기하게 했고 결국 한국 독립을 이끌어냈다”며 지지를 호소해 박수를 받았다. 상원에서 결의안을 발의한 토비 앤 스타비스키 뉴욕 주 상원의원은 “유관순은 3·1운동의 상징이자, 자유와 인권의 상징”이라며 동료 의원들을 설득했다.

당초 결의안은 유관순의 날 지정을 위해 추진됐지만 유 열사를 기리고 3·1운동 100주년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3·1운동의 날로 바뀌었다. 결의안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뉴욕주 의원 5명은 “한국은 일본 지배 하에서 억압과 차별, 폭력을 받았고 언어와 문화, 삶의 방식에서도 위협을 받았다. 식민 지배에 반대한 한국인들의 운동이 올해 3월 1일로 100주년을 맞았다”는 내용의 선언문도 발표했다.

미국 한인사회의 성장도 뉴욕 주의회 결의안 채택에 한몫을 했다. 존 리우 뉴욕 주 상원의원은 이날 의회에서 “한국계 미국인 사회는 뉴욕 주의 경제적, 문화적, 교육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필 레이모스 뉴욕 주 하원의원 등은 의사당 내의 한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와 3.1운동의 날 지정을 축하하기도 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미 동포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100년 전 3·1운동을 세계인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이 채택됐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뉴욕주한인회 등 한인 동포들은 올해 3·1운동의 날에 맨해튼 도심에서 만세 운동을 재현할 계획이다. 론 김 의원은 “학교 교실에서 1919년 3·1운동이 왜 중요한가를 똑바로 가르쳐주는 게 장기 목표”라고 말했다.


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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