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압박에도…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생산량 낮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2일 1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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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재로 유가 뛰자 증산 요구
사우디, 값 하락세에 태도 바꿔
공급과잉 논란, 러시아는 “계속 증산”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음 달부터 원유 생산량을 낮추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와 맞물려 올해 내내 상승 곡선을 그려왔던 국제 유가가 한 달 새 20% 가까이 급락하자 급히 감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등 주요 산유국들도 사우디에 이어 감산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 및 주요 산유국 장관급 회의에 참석한 사우디 칼리드 알팔리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은 “올해 12월부터 하루 평균 50만 배럴씩 감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급 부족을 걱정했던 시장 심리가 최근 과잉 공급을 우려하는 쪽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란산 원유 수출길을 틀어막으려는 미국이 이란의 생산·수출 감소분만큼 석유를 뽑아내라고 사우디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제 유가 상승의 주범’이란 국제사회의 비판을 우려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사우디를 거세게 압박했다. 사우디 역시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당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탓에 지난달 “일일 원유 생산량을 100만 배럴 증산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약 4년 만에 최고치(배럴당 86.29달러)를 기록하며 상승했던 국제 유가는 9일 배럴당 70.18달러로 올해 4월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해 총 8개국에 이란산 원유 수입 일시적 제재 면제를 허용하는 등 비교적 관대한 조치를 발표했고, 국제 경제의 성장 둔화에 따라 전체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 탓이다. 사우디는 배럴당 80달러 선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국제 유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OPEC 회원국을 중심으로 전체 원유 생산량 축소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러시아 등 OPEC 비회원국들이 동참할지는 아직 미지수라, 공급 부족이냐 혹은 공급 과잉이냐 등 국제 원유 수급 상황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알렉산더 노바크 에너지장관은 11일 “내년 원유 시장이 공급과잉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러시아 석유회사들은 내년에도 일평균 30만 배럴 증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이란이 미국 말을 듣지 않으면 국민이 굶게 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이란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9일(현지 시간) 영국 BBC방송 이란어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이란 국민이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이란 지도부가 알아야 한다”며 “자국민이 굶지 않는 걸 원한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인) 거셈 솔레이마니가 중동을 돌아다니며 죽음과 파괴를 일으키는 데 국부(國富)를 쓸지 (제재 대상이 아닌) 의약품을 수입하는 데 쓸지 선택하라”고 촉구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다음 날 자신의 트위터에 “폼페이오 장관이 이란 국민이 굶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한 사실을 잊지 않겠다. 이는 비인도적 범죄”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 발언은) 미국의 변덕을 이란에 짐 지우려는 필사적인 시도”라며 “그의 전임자들처럼 미국의 노력에도 이란은 그저 살아남을 뿐 아니라 주권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카이로=서동일특파원 dong@donga.com
워싱턴=박정훈 특파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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