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길진균]南北 정상 첫 오픈카 퍼레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2000년 6월 3일.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흘 앞두고 극비리에 방북한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은 평북 신의주 특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을) 과거 장쩌민 중국 총서기나 어떤 외국 정상보다 더 성대하게 최고로 모시겠다”고 했다. 북측은 무개차(오픈카) 퍼레이드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남측은 경호 문제로 거부했다. ‘적지(敵地)’의 심장부에 대통령이 처음 가는 행사였다.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컸다. 경호실은 “대통령이 위험에 처하면 한 명도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정신 교육을 실시했다.

▷김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 김정일이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 전 원장은 “그 순간, 그(김정일)가 말한 것처럼 ‘최고의 환영 행사’가 거행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오픈카는 아니었지만, 캐딜락 리무진을 함께 탄 두 정상은 수십만 평양시민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 등의 방북 때도 김정일은 공항 영접에 나섰지만 승용차에 동승한 적은 없었다. 김정일은 “이렇게 환영 인파가 많은데 무개차를 타고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방북 때 드디어 오픈카 퍼레이드가 열렸다. 북한은 1960∼1980년대 메르세데스벤츠사가 생산한 ‘풀만 리무진 랜돌렛’을 제공했다. 정부 수반 등을 위해 제작됐다는 최고급 승용차였다. 하지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동승했다. 2001년 9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때 이뤄진 카퍼레이드도 그랬다.

▷남북한 정상이 함께한 첫 번째 평양 오픈카 퍼레이드가 어제 성사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은둔형’으로 불렸던 아버지보다 한층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는 부인과 함께 공항에 나타나 문 대통령에게 서양식으로 뺨을 세 번 맞추는 인사를 했다. 차량도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로 바뀌었다. 북한은 이 장면을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김정은의 개방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터다. 하지만 세계가 보고 싶은 것은 김정은의 깜짝 이벤트가 아닌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행동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남북 정상회담#오픈카 퍼레이드#비핵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