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두테르테 ‘결별 선언’에 화들짝 동아태 차관보 급파 진위파악 나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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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급격한 탈미친중(脫美親中) 행보에 놀란 미국이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사진)를 필리핀으로 급파하기로 했다.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두테르테 대통령이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미국과 사실상 결별을 선언하자 그동안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미국이 황급히 필리핀 지도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은 20일(현지 시간) 기자들과 만나 두테르테 대통령의 ‘미국과의 결별’ 발언에 대해 “미국과 필리핀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연결돼 있기에 결별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무부는 결별 발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22일 동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러셀 차관보를 필리핀으로 보내 상황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일 중국과 필리핀 기업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무역투자포럼에서 “미국과의 결별(separation)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하루 전 교민간담회에서 미국에 대해 “이제는 작별(goodbye)해야 할 시간”이라고 한 것보다 더 나간 표현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일 장가오리(張高麗) 중국 상무부총리가 참석한 행사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또다시 ‘개××’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필리핀의 결별 통보로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갈등하고 있는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한 축이 흔들리는 상황을 맞게 됐다. 필리핀은 한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핵심 동맹이다. 미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우리 입장에선 두테르테가 북한 김정은만큼 골치 아픈 존재”라고 말했다.

 6월 퇴임한 베니그노 아키노 전 대통령의 친미 노선을 180도 뒤집고 나선 두테르테의 탈미친중 전략은 시진핑 체제의 중국에서 얻어낼 게 더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남중국해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로 두테르테 대통령과 합의하면서 그 대가로 필리핀에 고속철도 사업을 비롯한 인프라, 에너지, 금융통신 등 분야에서 135억 달러(약 15조2000억 원) 투자라는 선물을 안겨 줬다. 시 주석은 또 내년에 필리핀을 답방할 것으로 알려져 양국이 밀월 관계에 접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파격 행보에 필리핀 내에서도 비판론이 만만찮다. 리처드 고든 필리핀 상원의원은 21일 “미국과의 결별에 동의할 수 없다. 단지 몇 가지를 얻기 위해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은 근시안적”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군부도 두테르테 대통령이 전통적 우방인 미국에 반대하는 태도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필리핀 대통령궁은 이날 성명을 내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은 자주적 외교정책을 펼쳐 가겠다는 그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중국 외교부도 “중국은 필리핀이 주권 국가로서 자체 판단에 의해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 존중한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두테르테#미국#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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