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낯선… 美의회 인사청문회의 풍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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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無 인신공격-막말-삿대질은 없고
3 有 정책공방-유머-감사인사 넘쳐

28일(현지 시간) 오전 10시, 미국 워싱턴 의사당의 ‘하트 오피스 빌딩’ 216호에서는 미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법무장관에 지명된 로레타 린치 후보자에 대한 상원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인준 청문회가 시작됐다.

린치 후보자는 뉴욕 동부연방지검 검사장 출신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호위대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까웠던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지난해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관이 비무장 흑인 청년을 총격으로 사망하게 한 사건을 계기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와중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후임으로 발탁됐다.

청문회는 시작 전부터 긴장된 분위기였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뒤 열리는 첫 장관 후보자 인준 청문회인 데다 현재 미국 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을 다루는 주무 장관이 법무장관이란 점에서 시작부터 공화당의 강공이 예상됐다. 데이비드 비터 상원의원은 “인준을 거부하겠다”고까지 했었다.

예상대로 공화당 의원들은 후보자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행정명령으로 불법 체류자 수백만 명에게 미국에 살 수 있는 법적 지위를 준 거 아니냐?” “이번 행정명령은 당신이 아니라 물러나는 현 장관이 주도한 거 아니냐. (소신이 다르다면) 솔직히 편하게 밝혀보라.”

검사 출신인 린치 후보자는 의원들의 돌직구와 능구렁이 같은 유도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조목조목 법리를 앞세워 “법무부가 판단한 합법이라는 의견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시간이 갈수록 표정이 일그러진 쪽은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했고 어떤 의원은 똑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고성이나 삿대질은 없었다. 팽팽한 긴장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감정을 꾹꾹 누른 저음들이 마이크를 타고 흘렀다. 후보자도 때로 “내가 결정 과정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말씀드리겠다”며 피해가기도 했다. 보기 딱했는지 민주당 찰스 슈머 상원의원이 “후보자를 인준하는 날이지 행정명령을 인준하는 날이 아니지 않느냐”며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공화당의 ‘저격수’이자 당내 보수 세력 ‘티파티’의 간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의 공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후에 다른 불법적인 결정을 해도 지지할 건가?”(크루즈 의원) “가정에 기초한 질문이다. 답하기 어렵다.”(린치 후보자) “내 질문은 간단하다. 법무장관을 희망하는 사람으로서 불법적인 행위(행정명령)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다.”(크루즈 의원) “판단할 추가적인 정보를 주면 말씀드리겠다.”(린치 후보자)

평소 대중 연설에선 거친 표현도 종종 썼던 크루즈 의원이었지만 이날은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그쳤다. 린치 후보자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찰스 그래슬리 법사위원장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누가 위원장을 할 거냐. 평화적 정권 교체를 기대한다”며 폭소를 끌어내기도 했다. 9시간에 걸친 질의응답이 끝나자 의원과 후보자 모두 감사인사를 주고받았다.

이날 청문회는 인신공격, 고성, 삿대질이 없었던 대신 정책질의, 웃음, 감사인사가 있었다.

가족 소개도 공격 대신 후보자의 성장 환경을 이해하는 따뜻한 공감이 주를 이뤘다. 가족을 일일이 의원들에게 소개하던 린치 후보자가 “저는 아버지의 어깨를 보며 컸습니다”라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버지를 회고할 때에는 모두 진지하게 경청했다. 그는 이날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출신으로 2009년 전사한 동생의 배지를 가족 증언석에 놓기도 했다.

린치 후보자는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나고 자랐으며 흑인에 여성이라는 비주류 배경에도 검사 시절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강단 있게 처리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상원 법사위는 29일 하루 더 청문회를 열고 린치 후보자에 대한 인준 여부를 결정해 상원 전체회의에 넘길 예정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무난하게 관문을 통과해 첫 흑인 여성 법무수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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