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삶의 質 뒷걸음… 미혼모-학자금 대출 늘고 복지지출 감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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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재단 31개 지표 분석 보고서… 8개만 개선 23개는 저하

미국 워싱턴 인근 비에나 시에 살던 마셜 씨 부부는 얼마 전 집값이 좀 더 싼 인근의 옥턴 시로 이사했다. 아들 셋을 키우는 부부는 기자에게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데도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집을 줄여 목돈을 마련했다”며 15년 정든 동네를 떠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그곳에 사는 미국인의 일상은 과연 이전보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인 헤리티지 재단은 29일 처음으로 미국인의 생활과 직결된 31개 지표를 분석한 ‘2014년 문화 및 기회 지수’ 보고서를 공개하고 앨리슨 대강당에서 발표회를 열었다. 이 재단이 매년 선정하는 ‘경제 자유도’ 지수와 별개로 일상생활 관련 지표를 종합 분석한 88쪽짜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삶이 이전보다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팍팍해졌다.

분석 대상 31개 지표 중 이혼율, 낙태율, 폭력 범죄 발생률, 고교 졸업률 등 8개 항목만 이전보다 나아졌고 출산율, 복지비 지출, 학생들의 읽기 능력 등 23개 지표는 이전보다 못하거나 정체 수준이었다. 보고서는 미 인구조사국과 노동부 교육부 등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됐다.

국가의 출산력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 여성 1인당 출산율은 2012년 말 현재 1.88명으로 2002년에 비해 0.14명 줄어들었다. 반면 미혼모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2012년 말 현재 15세 이상 미혼 여성 중 출산한 비율은 40.7%로 2002년(34.0%)에 비해 6.7%포인트 늘어났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복지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론 하스킨스 박사는 “미혼모 비율이 증가하면 그만큼 생활보호대상 가정이 늘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수조 원의 복지 예산을 써도 ‘가난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도입한 공교육 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17세 학생을 기준으로 미 연방정부에서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시험 중 읽기 성적은 2012년 말 현재 500점 만점에 287점으로 1999년의 288점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반면 학비는 크게 올라 학자금 대출은 폭증했다. 2012년 말 현재 학생 1인당 평균 학자금 대출은 2만6500달러(약 2783만 원)로 2002년보다 4612달러 올랐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최근 미주리 주 퍼거슨 시 사태를 계기로 논란이 된 폭력범죄 발생률은 오히려 줄었다. 2002년엔 10만 명당 폭력범죄 발생 건수가 494.4건이었으나 2012년 말 현재는 107.5건 줄어든 386.9건으로 집계됐다. 분석에 참여한 맨해튼 인스티튜트의 헤더 맥도널드 박사는 발표회 뒤 기자와 만나 “뉴욕 등 주요 대도시에서 20년 넘게 진행한 폭력범죄와의 전쟁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이혼율이 늘지 않은 것도 눈에 띈다. 2012년 말 현재 1000명당 이혼 건수는 3.6건으로 2002년보다 오히려 0.4건 줄었다.

짐 드민트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은 “부정적 지표가 긍정적 지표를 압도하는 것은 소득 수준의 불균형에 따른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데 따른 영향이 크다”며 “정부가 정책 집행 과정에서 일상의 지표가 반영될 수 있도록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앞으로 매년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헤리티지 재단#미국 문화 및 기회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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