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뉴욕 한복판 도넘은 ‘세월호 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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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특파원
부형권 특파원
21일 오후 4시(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파크애버뉴 뉴욕 총영사관 앞.

검은 옷을 입고 노란색 리본을 가슴에 단 재미동포 300여 명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모인 이들 손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영정이 들려 있었다. 몇몇 여성은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눈시울까지 붉혔다.

집회 사회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방문에 맞춰 기획된 이 집회에 반대하는 교포사회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물리적 충돌을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먼저 했다. 시위가 시작되자 비난의 화살은 박 대통령에게 집중됐다. 우선 박 대통령 얼굴 위에 ‘퇴진(OUT)’이라고 크게 쓴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한 참가자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참으로 후안무치하고 독재자의 냄새마저 풍기며 국민을 향한 협박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유엔본부 앞까지 1.5km 정도 행진하면서 “박근혜, 아웃”을 크게 외쳤다.

세월호 참사와 정부의 한심한 대응에 치미는 분노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시위의 분노 표출 방식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일부 참가자는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라는 팻말을 들었다. 박 대통령을 ‘살인마’라고 표현하고 ‘죽은 아이 살려내고 너도 당장 죽어라’라는 문구마저 있었다. 이들은 주최 측으로부터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유엔본부 앞 마무리 집회에서 사회자는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을 앞으로 불러내더니 “특별법을 제정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따라 외치게 했다. 이 어린이들이 ‘제정’이나 ‘퇴진’의 뜻이 뭔지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의 구호 제창이 길어지자 일부 참가자조차 “그만하자”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주최 측은 마지막 순서로 희생자 영정을 모아 기념촬영을 한 뒤 “이 사진을 유가족에게 위로의 마음을 담아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지나친 비난과 저주’로 덮여버린 느낌이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세월호 시위#맨해튼#파크애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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