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자, 36조원 전재산 기부… ‘아랍의 게이츠’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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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리드 왕자 기자회견서 밝혀
“빌 게이츠 자선활동에 영감받아… 자선은 의무이자 이슬람의 본질”
게이츠 “우리 모두에게 자극” 환영… 포브스에 “재산 과소평가” 소송도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중 이례적으로 자수성가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아랍인’으로 불리는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1일 자신의 전 재산 32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중 이례적으로 자수성가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아랍인’으로 불리는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1일 자신의 전 재산 32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최고 부자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60)가 전 재산 320억 달러(약 36조 원)를 기부한다고 영국 BBC 등이 1일 보도했다.

왈리드 왕자는 이날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03년 설립한 자선단체 ‘알 왈리드 자선사업’에 전 재산 32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 돈은 사우디의 여성 인권 향상, 재난 구호, 질병 퇴치 등에 쓰일 예정이다. 그는 이미 이 자선단체에 35억 달러를 기부했다.

왈리드 왕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의 자선활동에 영감을 받아 전 재산 기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게이츠는 2000년 자신과 부인 이름을 따서 만든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지난해 말까지 423억 달러(약 47조3760억 원)를 내놨다.

왈리드 왕자는 “자선은 30년 전부터 해온 개인적 의무이자 이슬람 신앙의 본질”이라며 “평화롭고 평등하며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일에 헌신할 수 있어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게이츠 창업주는 이 소식을 듣고 “왈리드 왕자의 결정은 우리 모두에게 자극이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고 BBC는 전했다.

왈리드 왕자는 왕족의 특혜를 누리는 대신에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일군 것으로 유명하다. 1955년 사우디 2대 도시 지다에서 태어난 그는 압둘아지즈 사우디 초대 국왕의 손자이자 현 살만 국왕의 조카다. 그의 아버지인 탈랄 왕자는 살만 국왕의 이복형이다. 친할머니가 아르메니아인, 어머니가 레바논인인 탓에 일찌감치 왕위 계승과 멀어진 왈리드 왕자는 사업가의 길을 택했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먼로대(경영학 학사)와 시러큐스대(사회과학 석사)를 졸업한 그는 25세인 1980년 사우디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빌린 단돈 3만 달러로 건설회사 킹덤홀딩스를 차렸다. 이후 씨티은행, 뉴스코프, 타임워너, 애플, 아마존, 디즈니 등 세계적 기업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현재 리야드에 살고 있는 그는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덕분에 보수적인 사우디 왕가의 일원답지 않게 진보적이고 솔직한 언행으로 유명하다. 운전 금지 등 사우디 여성이 받는 각종 차별을 철폐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석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우디의 허약한 경제 체제도 곧잘 질타한다. 3번 결혼했지만 모두 이혼한 사생활도 언론의 단골 소재다. 사우디 왕실 일각에서는 그를 지나친 친미(親美) 성향의 개혁주의자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현대자동차와 대우에 각각 1억 달러,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01년 투자금을 회수했다. 올해 3월에는 중동 4개국을 순방한 박근혜 대통령과 리야드에서 만나 한국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 재산 기부 발표로 왈리드 왕자의 정확한 재산 규모에 대한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올해 4월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226억 달러로 세계 34위 부자다. 하지만 그가 기부하겠다고 밝힌 액수는 포브스 추정 재산보다 94억 달러 더 많은 320억 달러다. 왈리드 왕자는 포브스가 2년 전 그의 재산을 200억 달러(당시 세계 26위)로 추산하자 자신의 재산을 과소평가했다며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합의 후 취하하기도 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기부#왈리드 왕자#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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