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이스탄불 르포]터키 넥타이부대 속속 거리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스탄불의 이한열’ 사망후 직장인 등 기성세대 대거 시위 합류

지난해 6월 이스탄불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을 잃었던 15세 소년이 최근 숨지면서 터키의 반정부 시위는 앙카라, 이스탄불 등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17일 오후 앙카라 위크셀자뎃시 거리 가로수 곳곳에는 ‘파시스트는 죽음이다. 뒤집어엎자’라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앙카라=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지난해 6월 이스탄불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을 잃었던 15세 소년이 최근 숨지면서 터키의 반정부 시위는 앙카라, 이스탄불 등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17일 오후 앙카라 위크셀자뎃시 거리 가로수 곳곳에는 ‘파시스트는 죽음이다. 뒤집어엎자’라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앙카라=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17일 오후 5시 터키 앙카라 중심지인 위크셀자뎃시 거리와 귀엘 공원.

30일 치르는 지방선거를 홍보하는 대형 플래카드 아래 반정부 시위를 선동하는 벽보가 여기저기 나붙어 있었다. 고교생연합회가 붙인 벽보에는 ‘기존 질서를 깨부수자’는 의미의 붉은 주먹 그림 위로 ‘미래는 시험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한다’는 노란색 글씨가 선명했다. 바로 옆 기둥에는 ‘파시스트는 죽음이다, 뒤집어엎자’는 다른 벽보도 붙어 있었다. 길바닥에는 ‘살인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귀엘 공원에 다들 모이자’는 격문이 널렸다.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서 만난 터키인들은 현 정치권에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6월 베르킨 엘반 군(15)이 빵을 사러 가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은 뒤 최근 숨지자 반정부 민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터키 정부가 트위터와 유튜브 접속을 차단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불만이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 “리더가 없다”는 불신 가득

위크셀자뎃시 거리 초입에서 100m쯤 걸어 들어가니 붉은 선동벽보가 붙은 나무 옆 벤치에 고교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학교에서 관광호텔경영학을 공부하는 디라라 세이멘 양은 “제대로 된 리더가 없고 정치인들이 자유를 막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완전히 망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베라트 율다쿡 군은 “법이 있지만 법 앞에서 사람들이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수수한 옷차림에 순진한 표정을 한 평범한 학생들이었지만 “시위가 있으면 언제든 참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터키의 최근 시위는 학생들뿐 아니라 직장인 등 기성세대까지 대거 참여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엘반 군이 숨지면서 정권이 과도하게 시위를 진압했다는 여론이 형성된 영향이다.

위크셀자뎃시 중심거리에서 42년째 복권장사를 하는 모하렘 일드름 씨(64)는 “어린 아이가 정치를 뭘 안다고 그렇게까지 진압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시위대보다는 무리하게 진압하는 경찰 때문에 장사에 방해가 된다”는 불평도 늘어놨다.

○ ‘정치가 경제의 발목 잡을까’ 우려


앙카라와 이스탄불 지역은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이 최대 성수기다. 상인들이 이달 말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정치 이슈 때문에 관광경기가 악화될까 고민하는 이유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국민 사이에 잠재된 분노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19일 이스탄불 에미뇬뉴 거리에 있는 향료시장. 접시와 장신구를 주로 파는 투르거트 알툰소이 씨는 “유럽 쪽에서 오는 여행객들은 정치 상황과 치안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상황이 악화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살리 투나 중소기업청 차장은 “정부는 의회에서 어려움 없이 입법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터키 정부가 20일 트위터 접속을 차단한 데 이어 유튜브도 곧 폐쇄할 것으로 보인다고 21일 전했다. 유튜브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측근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활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국민의 반발을 부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리스크컨설팅업체의 앤서니 스키너 이사는 “에르도안 총리와 터키의 빈부격차에 국민적 분노만 더욱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터키#앙카라#이스탄불#반정부 시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