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불붙인 폭동 27년만에… 굶주림에 성난 베네수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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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마두로 정권 실패로 혼란

세계 1위 원유매장량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돈을 펑펑 뿌려 ‘사회주의 천국’으로 불리던 베네수엘라. 요즘 심각한 식량난으로 폭동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요지부동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9일 보도했다.

이 나라에선 정부의 식량 배급 부족에 항의하는 행진을 벌이다 슈퍼마켓과 식료품점을 약탈하는 식량 폭동이 지난 2주 동안 50차례 넘게 발생했다. 그래서 식량 수송 트럭은 무장경호대의 호위를 받고 빵집 앞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식료품점 약탈자들은 경찰의 고무탄환 총격을 당한다. 이 과정에서 네 살배기 소녀를 포함해 최소 5명이 숨졌다.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인구 2800만 명인 베네수엘라 국민의 87%가 허기를 달래줄 음식을 살 돈이 없다. ‘기록및사회분석센터’는 베네수엘라인 평균 월급의 72%가 식료품 구입비에 쓰인다고 발표했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의 최대 수혜자였던 저소득 서민층이 식량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1∼11세 자녀 다섯을 둔 가정주부 레이디 코르도바 씨(37)는 “이틀 전 점심으로 닭 껍질과 돼지비계를 넣은 수프를 먹은 뒤 전 가족이 한 끼도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 암 환자인 루칠라 폰세카 씨(69)와 뇌종양 환자인 그의 딸 바네사 푸르타 씨(45)도 며칠간 죽 한 그릇 먹지 못했다며 “우리는 ‘마두로 식단’(마두로 정부의 식량배급 정책)에 의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씨(24)는 “옛날 카니발 축제 때면 장난 삼아 계란을 던지며 놀았는데 지금은 계란 값이 금값”이라고 전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식량난이 베네수엘라 국부의 원천이던 원유 값 급락 탓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비료 공급의 실패, 국영 농장 농기계 관리의 부실, 식량 수출입 조절의 실패 등 정부 식량 수급 정책의 총체적 실패가 가져온 재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두로 정부는 올해 야당이 장악한 의회의 국민소환 투표 요구를 묵살하고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 국내 식량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또한 식량배급권을 친정부 좌파 인사들에게만 몰아줘 그 반대 세력을 아사(餓死)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상황은 1989년 ‘카라카스 폭동(카라카소)’을 떠올리게 한다고 NYT는 지적했다. 당시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정부는 막대한 외채를 갚기 위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긴축 재정을 밀어붙여 대규모 임금 삭감과 실업 사태를 초래했다. 극도의 굶주림에 시달리던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주민들은 집단 봉기했고 이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300∼1000명이 숨졌다.

카라카소의 비극은 베네수엘라 사회주의화의 원동력이 됐다. 1992년 2월 이에 분노한 군부 쿠데타가 기획됐다가 무산됐는데 당시 주도자인 육군 중령이 7년 후 대통령에 취임한 우고 차베스다. 차베스 정권(1999∼2013년)과 이를 계승한 마두로까지 친사회주의 정부의 장기 집권은 카라카소가 가져온 국민적 트라우마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번엔 사회주의 경제정책의 실패가 ‘제2의 카라카소’를 초래하고 있다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회주의#베네수엘라#식량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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