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상호]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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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알랭 레네 감독이 만든 1955년 작 ‘밤과 안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비극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전후 폐허가 된 수용소(현재)와 독일 나치의 기록영화 속 과거 모습을 대비시켜 유대인 학살의 잔학상을 고발한다. 영화 속 히틀러와 나치 친위대장 힘러가 팔에 두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 문양은 인류 최악의 만행 상징물로 각인된다.

▷제주 민군복합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10∼14일)에 참가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의 욱일기(旭日旗) 게양 논란이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와 해군의 자제 요청에도 일본은 국제관례에 따라 게양을 강행할 태세다. 욱일기를 못 걸 바엔 불참하겠다는 강경 기류마저 감지된다. 청와대 홈페이지 등 인터넷 공간에는 욱일기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켄크로이츠기를 단 독일 전차가 프랑스와 이스라엘 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같다”며 정부에 적극 대응을 주문하는 글도 넘쳐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자위대의 공식기로 선정된 욱일기 게양이 자국법상 의무 조항이고 국제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해군 함정은 치외법권 지역이어서 한국이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일본은 욱일기를 앞세워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한반도 지배권을 확보한 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한국 중국 등 피해 국가들엔 독일 패망 이후 폐기된 하켄크로이츠같이 침략의 상징인 전범기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일제 식민지배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는 한국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전범기가 휘날리는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 등 주변국에 과거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는 패착이 돼 일본에도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전후 독일 총리와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나치 만행을 사과하고 반성했다. 책임을 회피하고 역사 왜곡에 집착해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대조적이다. 과거 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고선 욱일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도 환영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일본 지도자들은 직시해야 한다.
 
윤상호 논설위원 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욱일기#하켄크로이츠#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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