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 “천장 구멍 나 눈비 새던 백남준 집, 산중 암자 같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日음악거장 사카모토 류이치, 데뷔 40년 맞아 한국 첫 전시회
1984년 백남준과 공동작업… 이우환 화백도 10대 때부터 동경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음악상, ‘남한산성’ 음악도 평론가상 받아
“항상 새로운 소리 찾으려 노력… 옷감짜듯 나의 예술 짜가고싶어”

25일 서울에서 만난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5일 서울에서 만난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일본의 세계적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66)가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의 전시 공간 ‘피크닉’에서 사카모토를 만났다. 한 손으로는 특유의 백발을 넘기며 야무진 힘으로 기자의 오른손을 쥔 사카모토는 실내의 에어컨 가동 소리에도 움찔했다. 소리 실험가의 예민한 조건반사였다.

“세계 곳곳을 다닐 때마다 그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번에 남대문시장의 냉면집에 갔는데 2층과 3층의 소리가 사뭇 다르더군요. 일종의 직업병인 것 같아요. 하하.”

사카모토는 26일부터 10월 14일까지 이곳 ‘피크닉’에서 첫 한국 전시회 ‘류이치 사카모토: 라이프, 라이프’를 연다. “늘 공감각적 심상을 떠올리며 음악을 만들어왔기에 이번 전시는 제게 의미가 깊습니다.” 아피찻뽕 위라세타쿤(태국), 다카타니 시로(일본), 알바 노토(독일) 등 다양한 예술가가 사카모토의 음악을 녹여 영상과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다음 달 14일에는 사카모토의 활동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가 국내에서도 개봉한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로 망가져버린 피아노를 애써 연주하거나, 머리에 양동이를 쓰고 빗소리를 듣는 등 새로운 소리를 찾으려 분투하는 사카모토의 모습들이 흥미롭다.
영화 ‘코다’에서 양동이를 쓴 채 빗소리를 들은 사카모토(위 사진)가 서울 전시 작품 ‘LIFE―fluid, invisible, inaudible…’ 아래에 누웠다. 천장에 매달린 수조로 물과 소리가 떨어져 내린다. 씨네룩스·글린트 제공
영화 ‘코다’에서 양동이를 쓴 채 빗소리를 들은 사카모토(위 사진)가 서울 전시 작품 ‘LIFE―fluid, invisible, inaudible…’ 아래에 누웠다. 천장에 매달린 수조로 물과 소리가 떨어져 내린다. 씨네룩스·글린트 제공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그래도 혹여나 새로운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해 피아노를 매일 다르게 두드려 봅니다. 나무젓가락으로 여기저기 치고 비닐로 문질러도 보죠.”

이번 전시는 한국 문화에 대한 사카모토의 헌정이기도 하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과 공동 작업한 ‘올 스타 비디오’(1984년)도 포함됐다. “백 선생과 이우환 화백은 제가 10대 시절부터 현대미술 잡지를 탐독하며 남몰래 동경한 분들입니다. 당시 동양인으로는 드물게 세계 예술계를 선도한 분들이니까요.”

사카모토는 백 선생을 처음 만난 날을 어제처럼 또렷이 기억했다. “보자마자 절 ‘친구’라 부르며 안아주셨죠. 그날로 마음이 통했어요.” 몇 달 뒤 백 선생은 사카모토를 미국 뉴욕 소호의 자택에 초대했다. “낡은 미국식 건물이었는데 천장에 구멍이 나 눈비가 들이치더군요. 마치 산중 암자에 앉아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는 듯했습니다. 선(禪)적인 기분에 휩싸였었죠.”

사카모토는 1978년, 선구적 전자음악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와 솔로 앨범으로 데뷔했다. YMO 멤버로 월드투어를 돌며 수려한 외모, 독특한 패션, 독창적 음악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 “YMO가 등장한 뒤 일본 젊은이들의 헤어스타일이 옆머리를 직선으로 깎아 치는 ‘테크노 컷’으로 일제히 바뀌었어요. 허허. 재미난 시절이었죠.”

동양인 최초의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1987년 ‘마지막 황제’)인 사카모토는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 영화계와 작업한 영화 ‘남한산성’ 음악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도 받았다.

“실은 ‘마지막 황제’ 때, 혼신을 다해 만든 음악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난도질한 걸 보고는 ‘다시는 영화음악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어요. ‘어떡하면 내 음악이 돋보일까’만 생각했지 감독의 연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거였죠. 젊었으니까요.”

사카모토는 영향을 받은 예술가와 음악 인생을 돌아보다 마지막으로 일본 민담 ‘은혜 갚은 학’ 이야기를 꺼냈다. “학이 자신의 깃털로 남몰래 한 땀 한 땀 옷감을 짰듯, 예술을 짜나가고 싶습니다. 저도 한 마리 학이 돼서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사카모토 류이치#데뷔 40주년#마지막 황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