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탈락에 신난 英언론 “F조 순위표 오려두고 우울할때 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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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RUSSIA 월드컵]한국의 독일 격파에 전세계 깜짝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한국에 2골 차 패배를 당한 소식은 28일 하루 종일 세계 언론과 누리꾼 사이에서 최대 화제였다. 독일은 깊은 침묵과 슬픔에 빠졌다. 하지만 독일을 라이벌로 여겨온 나라들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한국 축구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드문 중국과 일본 언론까지 한국의 경이로운 승리에 찬사를 보냈다.

○ “오늘 우리는 매우 슬프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조별리그 탈락’이란 성적표를 받아든 독일은 충격에 빠졌다.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전차군단’ 독일 대표팀의 공식 트위터엔 경기 직후 허탈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미드필더 메주트 외질의 사진이 올랐다. 외질의 사진 위로 ‘말문이 막힘(Speechless). 독일, 월드컵 탈락’이란 표현이 적혀 있다.

27일(현지 시간) 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회의장에 있던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와 대화하는 시연을 했다. 독일의 한국전 패배에 관한 정보가 입력돼 있는 소피아가 독일이 그동안 차지한 우승컵(4차례)을 세면서 메르켈 총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맞아, 소피아. 지나온 오랜 시간을 보면 그건 사실이야. 그러나 솔직히 오늘 우리는 매우 슬프다”고 속삭였다.

독일 언론도 ‘재앙’ ‘악몽’ 등의 단어를 쏟아내며 일찌감치 짐을 싼 자국 대표팀을 비난했다. ‘빌트’는 ‘말이 안 나오네(Ohne Worte)!’라는 탄식성 표현으로 신문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매체는 4년 전에도 같은 표현을 썼었다. 하지만 당시엔 의미가 달랐다. 2014 브라질과의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이 개최국 브라질에 7-1의 대승을 거두자 ‘말이 안 나오네!’라는 경탄의 표현을 썼던 것이다. 빌트는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큰 굴욕”이라며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두 번 패하고 비틀거리며 러시아를 떠나게 됐다”고 전했다. 독일의 축구전문 매체 키커도 “역사적인 패배에 챔피언 독일이 사라진다”고 보도했다.

○ “F조 순위표 소장하세요”

독일 축구대표팀의 탈락을 보도한 영국 ‘선스포츠’의 1면 사진. 선스포츠는 독일이 꼴찌를 한 F조 순위표 밑에 “기분이 좋지 않아서 웃고 싶을 때 꺼내 보세요”라고 썼다.
독일 축구대표팀의 탈락을 보도한 영국 ‘선스포츠’의 1면 사진. 선스포츠는 독일이 꼴찌를 한 F조 순위표 밑에 “기분이 좋지 않아서 웃고 싶을 때 꺼내 보세요”라고 썼다.
반면 독일 축구에 오랜 기간 눌려 지내온 유럽의 경쟁 국가들에는 신나는 하루였다. 특히 축구 종가이면서도 오랫동안 독일에 밀렸던 영국은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을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다.

영국 매체 선스포츠는 28일자 신문 1면에 G조에 속한 잉글랜드 대표팀과는 관계없는 F조 순위표를 큼지막하게 실었다. 순위표 옆에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요아힘 뢰프 독일 감독의 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순위표 주변엔 점선을 둘렀고 점선 위엔 가위 표시도 해놓았다. 그리고 ‘우울할 때 꺼내 보면 웃을 수 있으니 (순위표를) 잘라서 보관하라’는 취지의 설명도 달아놓았다. 영국의 한 스포츠 바에선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손님들이 마치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듯 환호하는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다.
독일 ‘빌트’의 1면 사진. 빌트는 4년 전 브라질전 7-1 승리 때와 똑같이 ‘말이 안 나오네!’로 제목을 달았다.
독일 ‘빌트’의 1면 사진. 빌트는 4년 전 브라질전 7-1 승리 때와 똑같이 ‘말이 안 나오네!’로 제목을 달았다.
영국 못지않게 한국의 승리에 열광한 나라는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4년 전 안방 대회에서 독일에 1-7로 참담한 패배를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폭스스포츠 브라질’은 한국-독일 경기 종료 후 트위터를 통해 “아하하하(AHAHAHA)…”를 수십 번 반복해 올리며 독일을 조롱했다. 브라질 매체 ‘란세’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과 독일 국기를 나란히 배치한 다음에 ‘18!’이라고 썼다. 2018년에서 2와 0을 각각 2골을 넣은 한국과 무득점에 그친 독일의 국기로 대신한 것이다. 이는 독일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가 2017년 새해 축하 글을 SNS에 올리면서 숫자 ‘20’ 뒤에 브라질과 독일 국기를 나란히 배치했던 것에 대한 되갚음이다.

○ ‘한국이 독일 전차를 전복시켰다’
폭스스포츠 브라질은 웃음소리를 의미하는 ‘아하하하하…’  트윗으로 독일 탈락을 반겼다. 폭스스포츠 브라질 트위터
폭스스포츠 브라질은 웃음소리를 의미하는 ‘아하하하하…’ 트윗으로 독일 탈락을 반겼다. 폭스스포츠 브라질 트위터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한국이 독일 전차를 전복시켰다’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월드컵 최대 이변을 일으킨 한국에 찬사를 보냈다. 일본의 축구 전문 매체 ‘사커 다이제스트’는 “한국을 보고 우리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마지막 90분까지 싸워 이기겠다”란 일본의 간판 미드필더 가가와 신지의 말을 전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한국은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은 최초의 아시아 국가가 됐다”면서 언더도그의 반란을 조명했다.

한편 한국의 승리가 가져온 ‘나비효과’도 있다. 독일의 탈락으로 월드컵 판세까지 흔들리 게 된 것이다. 벌써 29일 오전 3시 G조 1, 2위 결정전을 치르는 잉글랜드와 벨기에는 서로 2위를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눈치작전을 펴기도 했다. 이전까진 2위로 올라가면 독일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젠 2위로 올라가야 브라질 아르헨티나 프랑스 포르투갈 등 강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은 “1, 2차전에 나서지 않은 선수 중에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 자격이 있는 선수가 있다”란 말로 1.5군을 출전시킬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자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벨기에 감독은 4골로 득점 2위이자 팀 전력의 핵심인 로멜루 루카쿠를 언급하며 “발목 보호를 위해 하루 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한국#독일 격파#전세계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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