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트럼프’ 호퍼, 오스트리아 대선서 무소속 반데어벨렌과 초접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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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에 의해 강요된 다문화주의, 세계화, 대량 이민을 반대한다.”

극우 공약을 내걸어 ‘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자유당(FPOe)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45)가 22일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무소속 알렉산더 반데어벨렌 후보(72)와 초접전을 벌였다.

선거 직후 공개된 출구조사 결과에서 호퍼는 50.1%, 반데어벨렌은 49.9%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개표가 97%가량 완료된 23일 오전 2시 현재(한국시간)까지도 호퍼와 반데어벨렌은 각각 50%를 득표한 상태. 이에 따라 개표 마지막까지 승부를 가늠할 수 없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고 AP 통신은 보도했다.

만일 호퍼의 당선이 확정되면 나치 패망 이후 서유럽과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에서 처음으로 극우 성향의 국가수반이 탄생하는 셈이다. 의원내각제인 오스트리아에선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지만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을 행사한다.

호퍼가 당선된다면 유럽에서 부는 ‘극우 바람’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크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덴마크 등의 극우 정당들이 지난해와 올해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선전한 바 있다. 하인츠 게르트너 빈(Wien)대 정치학 교수도 “(호퍼가 당선된다면)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환경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외국인 혐오, 난민 규제를 내건 극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호퍼는 아이젠슈타트에서 항공기술대를 졸업했고 헝가리를 사이에 둔 국경을 지키는 군인으로 복무했다. 19세기 독일 국수주의적 이상을 뿌리로 둔 독일남성동호회 ‘대학생학우회’의 명예회원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와 호퍼가 ‘쌍둥이처럼 닮은꼴’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다면 호퍼는 ‘오스트리아 제일주의’를 외친다. 난민 차단용 장벽 설치와 무슬림 입국 차단 주장도 쏙 빼닮았다.

한편 호퍼와 막판까지 경합을 벌이고 있는 반데어벨렌은 난민 규제 철회를 공약해 ‘오스트리아의 오바마’로 불린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호퍼는 부드러운 미소와 재치 있는 언변을 갖췄고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 그는 양복 재킷에 늘 권총을 갖고 다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위기 상황에서 누구나 스스로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녀들과 함께 사격 연습을 하는 사진을 즐겨 올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런 반데어벨렌의 행태를 두고 “늘 친절한 이웃이나 중도파 정치인처럼 포장하지만 양의 탈을 쓴 늑대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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