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집권당, 지방선거서 참패…차이잉원 차기 대선출마 불투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5일 17시 04분


코멘트
대만 수도 타이베이(台北) 등 6대 직할시 시장과 시의원 등 공직자를 선출하는 지방선거 및 올림픽 출전 명칭을 ‘대만’으로 변경하자는 국민투표안 투표가 24일 실시됐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신베이시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AP/뉴시스
대만 수도 타이베이(台北) 등 6대 직할시 시장과 시의원 등 공직자를 선출하는 지방선거 및 올림픽 출전 명칭을 ‘대만’으로 변경하자는 국민투표안 투표가 24일 실시됐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신베이시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AP/뉴시스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며 중국과 각을 세워온 대만 집권당 민진당이 24일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정부 중간 평가 성격인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차이 총통이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직을 사임하면서 차기 대선 출마가 불투명해졌다. 이번 선거가 양안(兩岸·중국-대만 관계)에 미칠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인다.

민진당은 이날 6개 직할시를 포함해 총 22개 시와 현에서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 직할시 2곳 등 6곳에서만 승리했다. 반면 중국과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야당인 국민당은 직할시 3곳을 포함해 15곳에서 이겼다.

특히 20년간 민진당이 시장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던 남부 최대 도시 가오슝(高雄) 직할시에서 ‘한류(韓流)’ 돌풍을 일으킨 한궈위(韓國瑜) 국민당 후보에게 패배한 것이 결정타였다. 가오슝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잔당의 세력 기반이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한궈위가 이념 대신 “가오슝을 다시 위대하게 하자”라며 지역 경제 발전을 내세워 변화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유권자들을 파고든 결과라고 대만 언론들은 평가했다. 투표 전날인 23일 밤 유세 때 자신과 같은 대머리의 지지자 500명과 함께 “가오슝을 밝히자”고 했던 한궈위는 24일 가오슝 인구 277만 명을 의미하려고 머리를 민 227명과 함께 유세 연단에 올랐다. 그는 국민당 승리의 1등 공신으로 떠오르며 단숨에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

반면 차이 총통은 선거 대패 이후 24일 기자회견에서 굳은 표정으로 민진당 주석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도 이날 페이스북에 “이번 선거는 정부의 성과를 점검하는 투표다. 결과는 국민들이 불만족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행정원장 사의를 표시했다. 그러나 차이 총통은 이 사의를 반려했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관계가 악화된 양안관계 정책에 대한 불만, 경제 정책 실패에 대한 민심 이반으로 민진당이 패배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차이 총통이 2016년 집권 이후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하나의 중국’(대만은 중국의 일부이기 때문에 대만의 국제사회 지위를 인정하지 말라는 중국의 입장) 원칙에서 벗어나려 하자 경제 보복, 외교 군사적 압박등을 강화해 왔다. 이에 따라 경제가 악화되면서 20,30대를 중심으로 유권자들의 분노가 커졌다.

24일 지방선거 때 각종 현안에 대한 국민투표도 함께 진행됐는데 가장 민감한 이슈는 ‘2022년 도쿄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차이니스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자’는 안건이었다. 476만 명의 동의를 얻는데 그쳐 통과 문턱인 494만 명(25%)을 넘지 못하면서 부결됐다. 577만 명이 반대했다. 국민투표 통과 기준을 기존 50%에서 25%로 완화됐음에도 이를 넘지 못한 것이다.

이 이슈는 유권자들이 현 정부의 독립 추구 성향에 찬성하는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중국이 이 국민투표를 영토 분열 시도로 규정한 가운데 대만 유권자들이 결국 양안관계 악화보다는 안정을 원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CO)가 “명칭을 변경하면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다”고 3차례 경고하면서 대만 올림픽위원회가 “감정적으로 투표하지 말라”라고 호소한 것도 현실적 판단에 무게를 실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선거 및 국민투표 결과에 반색하고 나섰다. 마샤오광(馬曉光) 중국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25일 “양안관계 평화 발전의 이익을 계속 공유하고 경제 민생을 개선하고 싶은 많은 대만 민중의 강렬한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만 운동선수의 이익을 걸고 도박을 하는 행위는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다. ‘대만 독립’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만 독립 지지 성향의 대만 쯔유(自由)시보는 “중국이 가짜뉴스를 이용해 대만 선거에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국민투표 결과 대만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다. 국민투표에는 ‘2025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운용을 완전히 중단하는 전기법 조항 폐지’에 대한 동의 여부도 포함됐다. 투표자의 29.7%에 해당하는 530만5000명이 동의해 이 조항 폐지가 통과됐다. 하지만 대만 행정원은 “수명이 다한 원전들의 운용 연장은 이미 늦었다”며 “이 조항 효력이 없어졌지만 2025년 탈원전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