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로 4시간 거리를 20분만에… 브루나이 경제 대동맥 잇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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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비상하는 한국 건설]<2>대림산업

템부롱 대교 상판을 들어올리기 위해 교각에 설치된 론칭 갠트리. 반다르스리브가완=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템부롱 대교 상판을 들어올리기 위해 교각에 설치된 론칭 갠트리. 반다르스리브가완=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아시아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브루나이. 보르네오섬 북서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나라는 한국 경기도의 절반 크기에 인구가 41만 명(2015년 기준)에 불과한 작은 나라. 하지만 풍부한 원유와 각종 천연자원으로 1인당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7만7000달러(2018년 기준 추정치)에 달하는 부국이다.

최근 브루나이 정부는 석유·천연자원 중심 경제에서 탈피하려고 신사업 육성에 기반이 되는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건설시장 발굴에 공을 들이고 있는 국내 건설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 중인 국내 건설사는 대림산업이다. 현재 홀로 현지 시장을 지키면서 굵직한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 브루나이 경제의 대동맥을 만들다

브루나이 템부롱 대교 조감도
브루나이 템부롱 대교 조감도
해안가에 마련된 정박장에서 시속 50km로 달리는 고속 모터보트에 몸을 싣고 흩날리는 파도의 포말을 맞아가며 브루나이만을 10여 분 정도 달리자 망망대해 한복판에 150m 높이의 대형 인공 구조물이 여럿 눈에 띈다. 대림산업이 건설 중인 ‘템부롱 대교’ 건설공사 현장이다.

총사업비만 1조8000억 원에 달하는 템부롱 프로젝트는 국토의 균형 발전과 브루나이만(Brunei Bay)을 국제 물류항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 국책사업이다. 총 5개의 구간으로 구성돼 있는데 대림산업은 공사구간 중 가장 긴 13.65km짜리 해상교량과 1주탑 사장교, 주탑이 두 개인 2주탑 사장교 건설을 맡고 있다.

브루나이 국토는 내륙은 말레이시아 국경을, 바다는 브루나이만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 있다. 서쪽에 위치한 ‘무아라’에서 동쪽 ‘템부롱’까지 가려면 승용차로 4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말레이시아 국경도 두 차례 넘어야 한다. 배를 이용하더라도 1시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템부롱 대교가 완공되면 바다 위를 지나는 30km 길이의 고속도로를 통해 20분이면 충분하다.

대림산업 안병욱 현장소장은 “템부롱 대교가 건설되면 브루나이의 국가 경쟁력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템부롱 대교가 ‘한강의 신화’로 불리는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고 경제 대동맥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경부고속도로처럼 될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로 브루나이는 템부롱을 개발해 앞으로 100년의 먹거리를 책임질 산업의 씨앗을 뿌린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 템부롱 지역은 벨라롱 국립공원과 페라다얀 휴양공원 등과 같은 열대 수림과 생물을 자연 상태로 보여주는 관광지로만 이용되고 있다.

○ 공중에 매달린 초대형 기중기

건설공사는 현재 순항 중이다.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하루 평균 1500명이 투입돼 10월 말 현재 전체 공사의 85% 정도가 진행된 상태.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불과 41개월 만에 바다 위 13.65km의 도로를 포함한 30km 길이의 도로를 건설해 달라는 브루나이 정부의 요구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대림산업은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에 확실한 해법을 제시해 10개 업체가 참여한 입찰에서 4위를 하고도 공사를 따냈다. 대림보다 앞선 업체들은 모두 중국 건설사들이었다. 해법은 바로 대림산업이 개발한 ‘론칭 갠트리(launching gantry·기중기의 일종)’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 장비는 다리의 하중을 떠받치는 교각을 세운 뒤 그 위에 상판을 올리는 초대형 기중기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건설 현장에 쓰이는 것과는 규모가 다르다. 일반적인 갠트리는 800t짜리 상판을 하나씩 들어올린다. 반면 대림의 장비는 최대 1700t까지 한꺼번에 들어올릴 수 있도록 제작됐다. 대림산업이 아이디어를 내고 영국업체에 설계를 맡긴 뒤 중국에서 만들었다. 대림이 만든 론칭 갠트리는 150m 정도 높이의 다리 구조물에 얹혀져 있다. 멀리서 보면 공중에 노란색 기중기가 매달린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이를 통해 공사 기간은 절반으로 줄었다.

얕은 수심도 걸림돌이었다. 다리 교각을 세우고, 상판을 얹는 데 필요한 바지선이 오가거나 정박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수심은 최소 3m. 하지만 브루나이만 바다의 평균 수심은 50cm에 불과했다. 실제로 바다 한가운데 현장을 방문했을 때 주변 바다에서 조개를 줍는 현지인들이 보일 정도였다. 밀물을 기다려 작업하려 했지만 필요한 수심을 만들어주는 밀물이 하루 한 번에 그친다는 점도 현장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고심 끝에 찾아낸 답은 바다 밑 준설이었다. 대림산업 김호영 부소장은 “공사 현장 주변 바닥을 퍼내 3.5m의 수심을 확보했다”며 “퍼낸 모래와 뻘은 인근 지역 섬 주변을 매립하는 데 사용했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매립한 면적만 무려 2억 m²에 달한다. 국제 규격 축구장(약 7140m²)이 2만8000개 이상 들어서는 규모다.

○ 오랜 인연, 쌓인 신뢰

대림산업은 1970년 브루나이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플랜트 기계유지 개수공사’를 수행하면서 국내 업체 중 진출 1호가 됐다. 이후 현대건설, 경남기업 등도 진출했지만 1990년대 말 경제 위기 이후 대부분 철수하고 대림산업만 남아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국제유가 하락으로 브루나이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건설공사 물량이 바닥난 탓이다.

하지만 올해 다시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어 경기 침체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브루나이 국토개발부는 올해 6월 △질적으로 향상된 삶 △지속가능한 개발 △풍요로운 국가 등 3가지 목표를 달성하겠다며 ‘국토개발전략 2018∼2023’을 발표했다. 개발전략에 따르면 자원과 자산 가치 극대화 등을 목적으로 외국자본 등을 유치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안 소장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관시(關係)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다”며 “앞으로 브루나이에서 추가 사업이 나온다면 대림이 오랫동안 브루나이를 지킨 점이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림산업이 그간 보여준 기술력도 신뢰를 두텁게 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지난해 준공된 브루나이 최초의 해상특수교량인 ‘리파스 대교(Riphas Bridge)’이다. 이 다리는 수도인 반다르스리브가완을 관통하는 브루나이강의 양쪽 지역을 연결해준다. 입찰 당시 현지 기업만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대림산업은 현지 업체와 컨소시엄을 맺어 입찰 자격을 얻었다.

리파스 대교는 브루나이의 첫 번째 특수교량이다. 이 때문에 기술적인 면은 물론이고, 국가의 랜드마크이자 관광명소를 만들기 위해 디자인 측면에서 발주처의 요구조건이 까다로웠다. 대림산업은 브루나이의 국교(國敎)가 이슬람교라는 점에 착안해 주탑을 이슬람 사원을 상징하는 돔 모양으로 디자인하고 1층에 이슬람 기도실을 설치했다. 주탑 최고 높이도 국왕의 생일인 7월 15일(영어식 표기 157)을 기념해 157m로 책정했다. 그 결과 해외 경쟁업체보다 높은 공사금액(1230여억 원)을 써내고도 수주에 성공했다.

안 소장은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무시무시하다”면서도 “기술면에서 가진 우위를 통해 브루나이 시장을 계속 장악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반다르스리브가완=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자동차 4시간 거리#브루나이 경제 대동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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