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종갑]동북아를 잇는 전력 실크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
“2030년 월드컵 남북 공동 개최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월드컵 한국-멕시코전에서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에게 건넨 말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새로운 희망으로 커지는 건 체육행사뿐만이 아니다. 전력인들의 숙원 과제인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도 이번 한-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걸음 더 현실에 가까워졌다. 22일 한국전력은 러시아 국영 전력기업 로세티(ROSSETI)와 ‘한-러 전력연계 공동연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러시아 에너지부와 국영 전력회사 최고책임자들은 그들이 주창해 온 ‘에너지 링(Energy Ring)의 실현이 머지않았다’는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한국-중국-일본-러시아의 전력망을 잇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전기를 수출 상품처럼 국가 간에 사고팔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의 수력과 천연가스, 몽골의 풍력과 태양광으로 생산된 전기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한중일러 대표 전력기업들이 뜻을 모았고, ‘가로축’인 한중일 3국은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도 마친 상태다. 한국이 러시아와 MOU를 체결하면서 ‘세로축’도 이제 출발선상에 서게 된 것이다.

북미와 유럽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를 연결해서 사용해 왔다. 최근에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까지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아래는 바다, 위로는 북한과 맞닿아 있어 전기 사용 측면에서는 사실상 섬과 같다. 이웃나라와 전기를 공유하는 게 누구보다 필요한데도 불확실한 국제관계 때문에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런 점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 간의 평화 기운은 동북아 전체의 교류 촉진을 위해서도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참가국들에 주는 경제적, 정치·외교적 편익과 의미가 크다. 중국 몽골 러시아는 한국 일본과 계절이나 최대 전력사용 시기가 각기 다른데, 남는 전기를 부족한 나라로 보내고 받게 되면 모두에 이익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잘 활용하면 자연스럽게 에너지 허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 간 전력망을 잇는다는 건 단순히 전기를 거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별 전력 총사용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가능해지면 그만큼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저장장치도 필요 없으니 투자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큰 규모의 기저발전도 불필요하고 화력과 원자력발전의 의존도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드 연결이 된 국가 간의 관계는 특별하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이 열린다. 이어 11월에는 세계 전력인들이 참여하는 빛가람전력기술엑스포(BIXPO)가 개최된다. 이런 계기에 중국 러시아 일본의 관계자들과 이 담대한 계획을 더 구체화해 나갈 것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통해 그 옛날 광활한 대륙을 연결했던 비단길이 ‘에너지 실크로드’로 부활할 날을 꿈꾼다.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
#동북아 슈퍼그리드#전력망#에너지 전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