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양옆서 경찰 ‘샌드위치 작전’… 난동대비 양손에 수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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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도주 ‘범죄자’ 전세기 송환]긴박했던 마닐라∼인천 ‘한국판 콘에어’
국적기 오르자마자 체포영장 집행
흉기악용 우려 포크-수저 안쓰는 샌드위치로 기내서 점심 식사

오른쪽 사진은 범죄 피의자 47명과 호송을 맡은 경찰 120명 등이 탄 전세기 내부 모습. 좌우로 좌석이 3개씩 있고 가운데에 피의자가, 창가 및 통로 좌석에 경찰이 앉아 있다. 경찰청 제공
14일 오전 10시 30분경(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의 항공기 계류장. 남녀 수십 명이 차례로 줄을 섰다. 가슴에는 1부터 47까지 적힌 번호표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이들은 공항 직원들의 안내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주변에는 공항 경찰이 매서운 눈초리로 이들을 쳐다봤다.

번호표를 단 47명은 국내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른 뒤 필리핀으로 도주한 피의자다. 필리핀 이민청 산하 외국인수용소에 있다가 이날 오전 차량 20대에 나눠 타고 공항으로 왔다. 이동 내내 이민청 소속 수사관 120명이 이들을 감시했다.

인천국제공항 도착 14일 전세기로 필리핀에서 송환된 범죄 피의자 47명이 경찰과 함께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인천국제공항 도착 14일 전세기로 필리핀에서 송환된 범죄 피의자 47명이 경찰과 함께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공항에는 한국의 한 저비용항공사(LCC) 소속 비행기 한 대가 있었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태워가려고 1억 원 가까이 주고 빌린 전세기다. 안에는 한국 경찰 120명이 타고 있었다. 피의자 47명이 전세기에 오르자 곧바로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국적기 내부는 자국의 영토로 인정된다. 한국 경찰은 자신이 담당한 피의자에게 저마다 ‘미란다 원칙’(변호인 선임 등 피의자 권리를 당사자에게 고지하는 것)을 알리고 수갑을 채웠다.

전세기 기종은 보잉 737-800. 정원은 189명이다. 이날 전세기에는 피의자와 경찰, 승무원, 의료진을 포함해 177명이 탔다. 좌우 3개씩 있는 좌석의 가운데가 피의자 자리였다. 양 옆에는 경찰이 앉았다. 피의자가 연루된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 소속이었다. 여성 피의자 5명에게는 모두 여경이 배치됐다. 하지만 승무원과 의료진은 모두 남성이었다.

비행기는 공항 사정으로 약 40분 지연된 끝에 현지 시간 오전 11시 27분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을 출발했다.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외국에 있는 범죄 피의자 수십 명을 집단으로 송환하는 건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영화 ‘콘 에어’를 연상케 한다. 흉악범 여러 명을 한 교도소에 수감하기 위해 비행기로 이송하는 과정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1997년)다. 영화에서는 기내에서 폭동까지 일어났다.

그래서 경찰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피의자를 중간에 앉힌 ‘샌드위치 작전’이 그중 하나다. 화장실에 갈 때도 경찰이 따라갔다. 저비용항공사라 원래 기내식은 안 나오지만 이날은 식빵을 4등분한 샌드위치가 나왔다. 흉기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포크나 수저는 처음부터 배제됐다.

한국으로 오는 내내 비행기 안은 조용했다. 전세기에 탔던 한 경찰은 “쓸 데 없이 자극할 수 있다고 해서 범죄자와 전혀 말을 섞지 않았다. 경찰은 모두 긴장돼 눈도 감지 못했는데 범죄자들은 대부분 잠만 잘 자는 모습이었다”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혹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기내에 테이저건 4개를 비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테이저건을 사용할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오후 3시 58분경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피의자들은 그제야 송환을 실감한 듯 고개를 숙였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나왔다.

오후 5시경 인천국제공항 F게이트를 통해 마스크에 모자를 쓴 수십 명이 줄지어 나오자 공항 이용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알지 못한 이용객 일부는 “연예인 오는가 봐!” “드라마 찍는 거 아니야?”라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들을 쳐다봤다.

피의자들의 손에는 수갑을 가리기 위한 검은색 천이 덮여 있었다.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였지만 필리핀에서 입던 옷 그대로 반바지 차림의 피의자도 있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도 눈에 띄었다.

공항 밖에는 이들을 태우고 갈 버스가 서 있었다. 피의자들은 곧바로 각자의 사건 관할 경찰서로 이송됐다. 경찰 관계자는 “체포영장 후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시간이 48시간이다. 이송에 걸린 시간만큼 조사 시간이 줄어들어 마음이 급하다”고 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 / 인천=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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