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에는 총… 트럼프, 총기규제 요청 유족에 ‘교사 무장’ 제안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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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과거 총기 참사를 겪은 학생과 부모 40여 명을 백악관에 초청해 면담했다. 미국 대통령이 총기 피해자들과 총기 대책 공청회를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플로리다 파클랜드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14일 발생한 총기 난사로 17명이 숨진 뒤 관련 대책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매우 진지한 태도로 피해자들의 말을 경청했고, 70분 정도 이어진 면담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 진지한 트럼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백악관 만찬장에서 열린 면담에서 총기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차례로 50분 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머리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경청했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독설과 직설을 퍼붓는 평소의 트럼프가 아니었다.

총기 참사로 딸을 잃은 앤드루 폴락은 이렇게 절규했다.

“여객기에는 물 한 병도 들고 들어가지 못하고, 워싱턴에 있는 교육부는 엘리베이터에도 경비원이 있는데 왜 학교엔 범죄자들이 버젓이 돌아다닙니까. 얼마나 많은 학교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총에 맞아야 합니까.”

학교 총기사고의 생존자 새뮤얼 자이프는 울먹이며 말했다.

“18세인 제가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전쟁에서나 사용될 법한 무기를 살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 명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5분 정도만 말했다. 그는 플로리다 총격범 니컬러스 크루즈에 대해 “아픈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이런 이들을 보낼 만한 정신보호시설이 얼마 없다. 총기 구매자에 대해 매우 강력한 신원 조사를 하고, 정신건강 문제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직원도 (방어용) 무기를 소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해 눈길을 끈 참석자를 향해 “학교와 같은 총기 금지구역은 미친 사람에겐 날아오는 총알이 없어 들어가 공격해도 되는 곳으로 인식된다. 더 이상 총기 금지구역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플로리다 총기 난사 당시 학생들을 보호하다가 숨진 풋볼팀 코치를 예로 들며 “그에게 총이 있었다면 도망칠 필요 없이 총을 쐈을 것이고 그러면 상황이 끝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총기 범죄는 보통 3분 안에 끝나는데 경찰이 도착하려면 5∼8분이 걸린다. 학교 교사들 중 20% 정도 자원자를 뽑아 훈련시켜 총기를 휴대하면 어떻겠느냐”는 등의 구체적인 제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나?”라고 물었을 때 참석자 여럿이 손을 들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양쪽을 다 이해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을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터놓고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직후 트위터에도 “항상 오늘 만남을 기억할 것이다. 고통의 한복판에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그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진지한’ 글을 올렸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바닥에 흘렸다가 안주머니에 넣은 질문지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는데 여기엔 ‘당신의 경험 중 내게 가장 알리고 싶은 게 무엇이냐?’ 등 5개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나는 당신의 말을 듣는다(I hear you)’였다.

○ 효력 있는 총기 대책으로 이어질까

이 이례적인 생중계 공청회가 미국 내 총기 범죄를 줄이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교사의 총기 휴대가 이뤄질지, 이뤄진다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도 주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이 총기 난사 근절을 촉구하는 고교생 주도의 전국적 시위를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선 만큼 일련의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당장 ‘범프스톡(Bump-Stock·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으로 개조하는 장치)’ 규제와 자동소총 구입 가능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높이는 방안 등이 도입 가능한 대책으로 꼽힌다.

이날 공청회에서 자이프 학생은 1996년 이후 대형 총격 사건이 없어진 호주 등 다른 나라의 좋은 선례를 따라 배울 것을 촉구했다. 세계에서 예멘과 미국 다음으로 인구당 총기 보유가 많은 스위스(인구 850만 명, 총기 200만 정)도 1년에 약 12건의 총기 살인이 벌어질 뿐 대량 살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호주 스위스 등은 위험인물에 대한 리스트를 철저히 공유해 무기 판매를 매우 엄격하게 통제할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을 강화해 총기 보유에 대한 책임감을 키워주고 있다.

그러나 총기를 왜 보유하는지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전엔 총기 범죄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USA투데이는 21일 “호주나 스위스는 사격 훈련이나 사냥을 위해 총기를 갖고 있지만, 미국인은 가족을 지키거나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한기재 기자
#트럼프#총기규제#교사#무장#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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