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G7 정상이 방문한 이세신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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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도(神道)의 뿌리인 토착신앙에서는 도처에 신이 있다고 여긴다. 고대 신화에는 ‘800만의 신’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처음에는 자연을 신으로 삼다 조상신을 모시는 풍조가 확산됐다. 종교법인으로 등록된 신사(神社)만 8만 개가 넘는다. 특히 왕실과 관련된 신을 섬기는 신사는 신궁(神宮)이라 칭하며 각별히 예우한다.

▷미에 현 이세 시의 이세신궁은 일본 왕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최고의 신사다. 이른바 ‘3종의 신기(神器)’ 중 하나인 거울이 보관돼 있다. 후지 산과 함께 일본인이면 누구나 죽기 전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버킷리스트에 등장하는 곳이다. ‘보수 세력의 성지(聖地)’라고 하지만 매년 연인원 600만∼1000만 명이 참배할 만큼 보통 사람들도 즐겨 찾는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신도 체제를 도입해 이세신궁을 신사의 정점으로 자리 잡게 했다. 도쿄의 메이지신궁, 야스쿠니신사와 함께 침략전쟁 과정에서 ‘천황(일왕)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일제강점기, 서울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도 아마테라스와 메이지 일왕을 기리는 신사였다. 일본의 패전 후 정교(政敎)분리 원칙에 따라 국가신도는 폐지됐지만 이세신궁은 매년 초 총리의 참배가 관례로 정착됐을 만큼 ‘일본 혼(魂)’을 상징하는 곳이다.

▷어제 이세시마에서 개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이세신궁을 방문했다. 종교의식 차원의 참배는 아니지만 세계의 지도자들이 단체로 이곳을 찾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파장과 논란이 만만찮다. 이세신궁은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을 당한 아픈 과거를 지닌 한국과 중국으로선 뒷맛이 개운할 리 없다. G7 정상들의 이세신궁 방문에 이어 아베 신조 총리는 오늘 예정된 오바마의 원자폭탄 피폭지(被爆地) 히로시마 방문까지 성사시키는 외교 성과를 거둬 리더십을 부각시키면서 정치적 입지도 강화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g7 정상회담#이세신궁#아베 신조#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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