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예능의 새 역사 쓰고… 굿바이, 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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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된 ‘무한도전’이 남긴 것
스튜디오도 대본도 없이 출발… 기발 혹은 무모, 끝없는 도전
‘리얼 버라이어티’ 새 장르 개척… 시청자와 호흡하며 장수 인기
김태호 PD “아이디어 고갈 상태, 다시 머리 채워 돌아오겠다”

2008년 1월 방송한 ‘이산 보조출연 특집’(위쪽)은 최고 시청률(30.4%)을 달성했다. 표도르 에밀리아넨코(아래쪽)와 티에리 앙리, 패리스 힐턴, 잭 블랙 등 해외 스타도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동아일보DB
2008년 1월 방송한 ‘이산 보조출연 특집’(위쪽)은 최고 시청률(30.4%)을 달성했다. 표도르 에밀리아넨코(아래쪽)와 티에리 앙리, 패리스 힐턴, 잭 블랙 등 해외 스타도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동아일보DB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이 쓴 ‘파리 대왕’은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김태호 PD는 2005년 MBC ‘무한도전’(무도)을 처음 맡았을 때 소설 ‘파리 대왕’을 떠올렸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우왕좌왕하고 내면의 욕망을 내보이며 서로 갈등하는 소년들의 모습은, 새로운 미션을 맞닥뜨리고 좌충우돌하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 예능인들의 분투기로 태어났다. 그렇게 매주 새로운 도전으로 달려온 시간이 13년. ‘무도’가 지난달 31일 563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무도’는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의 위상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흔히 예능 프로그램은 전성기가 지나면 지겹다는 지적을 받고 시청자의 외면으로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무도’는 종방연도 열었고, ‘무도 13년사’를 정리하는 코멘터리 영상도 촬영한다. 한 지상파 방송사 PD는 “‘무도’ 종영은 인기 프로그램 하나가 끝난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 현상이 막을 내렸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무도는 한국 예능사(史)에서 수많은 ‘최초’를 양산했다. 스튜디오도 구체적 대본도 없는 ‘현장 리얼 버라이어티’의 본격 탄생을 알렸으며, 여러 명의 출연진이 집단 MC를 맡고 때로는 미션을 수행했다. 멤버마다 VJ가 따라다니며 세세한 표정과 행동까지 관찰하는 촬영 형태도 무도가 시작했다. 수많은 별명을 낳은 출연진의 캐릭터 쇼, ‘제7의 멤버’로 큰 역할을 한 자막 등은 이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당연히 사용하는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댄스스포츠, 조정, 봅슬레이, 레슬링 등에 도전하며 다양한 감동을 줬다. MBC 제공
무한도전 멤버들은 댄스스포츠, 조정, 봅슬레이, 레슬링 등에 도전하며 다양한 감동을 줬다. MBC 제공

정해진 포맷이 없다는 유연성은 오랜 시간 팬들을 붙들어 맬 수 있는 힘이었다. 영국 드라마 ‘오피스’에서 착안한 ‘무한상사’는 직장 생활을 풍자했고, 조정·레슬링·에어로빅 등 스포츠 특집은 ‘누구나 도전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김 PD는 “가요제나 역사 특집 같은 코너가 호평을 받았을 때는 기쁘면서도 ‘이번 주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제작진도 공허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를 할 때는 ‘배달의 무도’를 함께 진행했는데 그 뒤에 공허감이 두 배로 왔다”며 웃었다.

하지만 13년 세월은 명과 암을 함께 양산했다. 캐릭터 중심의 포맷은 팬덤을 구축했지만, 연예인에게 과도한 비중을 부여했다. ‘평균 이하’를 표방했던 ‘무도’ 멤버들은 점차 톱스타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출연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렸고, 멤버가 하나둘 하차하자 큰 타격을 입었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재미있었던 몸 개그나 ‘막말’에 대해 시청자들이 점점 민감해졌고 특히나 ‘무도’에는 기대 수준이 더 높았기 때문에 제작진이 최선을 다해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나긴 항해 뒤 항구로 돌아오는 ‘선장’의 심정은 어떨까. 김 PD는 “무한도전이 전성기였을 때는 30년 동안 제가 쌓아 온 인문학적 소양을 쏟아부었는데 이제는 아이디어를 탈탈 털어 넣은 것을 넘어 제습기에 넣고 건조까지 끝난 상태 같은 느낌”이라며 “새로운 책도 보고 세상을 구경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형태가 될진 모르겠지만,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가장 무한도전다운 모습이 준비가 됐을 때 꼭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mbc 무한도전#김태호 pd#현장 리얼 버라이어티#무한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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