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에 푹 빠진 세 남자 “뜻대로 안되는 낚시, 인생과 닮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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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예능 프로그램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1박 2일 동행 취재기

‘도시어부’ 팀의 막내 마이크로닷(왼쪽)이 장시원 책임 프로듀서와 잡은 물고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제작진은 “지금까지 다녔던 현장 중 가장 센 파도”라고 평했다. 배 뒤쪽에 쭈그려 앉아 머리를 숙인 채 1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한 스태프도 있었다. 채널A 제공
‘도시어부’ 팀의 막내 마이크로닷(왼쪽)이 장시원 책임 프로듀서와 잡은 물고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제작진은 “지금까지 다녔던 현장 중 가장 센 파도”라고 평했다. 배 뒤쪽에 쭈그려 앉아 머리를 숙인 채 1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한 스태프도 있었다. 채널A 제공
“아니, 여기까지 와서 배를 탄다니, 대체 서울에서 어떤 음해를 당한 거야?”

배우 이덕화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12시간 동안 낚싯배에 함께 탈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걱정과 놀라움이 반씩 섞인 표정이었다.

가을비가 내리던 12일 저녁, 서울에서 차로 5시간 거리인 경남 통영 연명항을 찾았다. 채널A 예능 프로그램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도시어부·목요일 오후 11시 방영) 촬영 현장에 1박 2일간 동행 취재를 하기 위해서였다.

12일 6:00 pm


촬영장 세팅이 한창인 시각. 빨간 모자에 까만색 방수복 차림의 이덕화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가장 연장자인 그는 스태프와 눈을 맞추며 친절하게 인사를 나눴다. 기자도 인사를 건네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쿠, 몰라봐서 미안하다”며 악수를 건넸다.

이덕화는 이번 추석 연휴에도 낚시를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도시어부’에 출연하는 것도 모자라 30년 된 멤버들과 시간만 맞으면 출조하는 진정한 낚시 마니아다.

1시간 뒤 드디어 본 녹화가 시작됐다. 그와 개그맨 이경규가 식당에서 식사하며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이들은 촬영 중에도 “너희 밥 안 먹었지? 왜 우리만 먹어. 같이 먹자고”라며 스태프의 식사를 챙겼다.

13일 4:30 am


다행히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쳤다. 출연진은 항구를 떠나 배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홍도로 향했다. 20t 낚싯배에 스무 명의 제작진이 탔다. 카메라 감독 7명이 출연자들 곁에 서 있었다. 뜰채, 낚싯대, 선실 안과 밖 모두 10여 개의 거치 카메라가 설치됐다. 언제든 입질이 오면 고기가 올라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하늘엔 드론 카메라가 ‘부우웅’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작은 배처럼 바다에 띄우는 보트캠도 자주 사용되지만 이날은 너울이 심해 띄우지 않았다.

“우오오∼. 우와! 왔다!”

오후 1시 40분쯤, 함성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파도에 조용히 흔들리던 마이크로닷(이하 마닷)의 낚싯줄이 어느새 팽팽해졌다. 알파벳 ‘J’자 모양으로 휘어진 그의 낚싯대가 금방이라도 ‘툭’ 꺾일 것 같았다.

마닷은 전날 저녁 전남 광양의 한 대학에서 공연을 하고 온 터라 2시간도 채 자지 못했지만, 낚시를 하는 내내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가 없었다. 늘 웃고 있는 그의 표정엔 에너지가 넘쳤다. 짓궂게 장난을 치다가도 형들이 낚시 훈수를 두면 예의 바르게 경청했다. 이러니 예쁨을 받을 수밖에. 이경규는 “마닷 공연을 언제 꼭 한번 가보고 싶다”며 애정을 표현했다.

물고기를 낚고 기뻐하는 이경규. 자칭 타칭 ‘어복 킹’인 그는 배 위에서 연신 ‘용왕님’을 부르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채널A 제공
물고기를 낚고 기뻐하는 이경규. 자칭 타칭 ‘어복 킹’인 그는 배 위에서 연신 ‘용왕님’을 부르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채널A 제공

 
13일 3:00 pm


“용왕님! 저 경규예요. 여기 끝에 있는 빨간 줄이에요(낚싯줄).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도와줘요. 하나 보내줄 때도 됐잖아요.”

고기가 안 잡혀 상심한 이경규가 애타게 용왕님을 찾자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현장에선 제작진도 낚시에 일희일비한다. 낚싯대에 입질이 오면 다같이 긴장하고 숨을 죽인다. 고기라도 올라오면 다함께 기쁨의 포효를 내지른다. 행여나 카메라에 비칠까 제작진이 그림자처럼 숨어 있는 여타 프로그램과 사뭇 다르다.

장시원 책임 프로듀서는 “일부러 스태프의 반응을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편집에서 살린다”고 말했다. 10년 이상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그는 “예능도 다큐와 다르지 않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덕분에 방송 화면에 노출된 제작진은 모습을 알아본 지인들에게 종종 연락을 받기도 한단다.

돌아오는 길


이날 낚시는 계획보다 2시간이나 연장됐다. 낚시를 사랑하는 도시어부들의 간절한 요청 때문이었다. 낚시로 굶주린 이들은 이튿날(14일)에도 새벽같이 바다로 나갔다. 전날 이덕화의 말이 떠올랐다. “낚시는 인생이야. 10번 실패해도 1번을 성공하면 그 손맛을 잊지 못해 또 가는 거지.”

‘도시어부’ 촬영팀을 뒤로하고 14일 오전 서울행 버스를 탔다.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멀미약을 잘 챙겨 먹은 탓에 걱정했던 만큼 배 타는 일이 어렵진 않았다.

자연이 주는 매력을 등 뒤에 남겨놓고 떠나자니 살짝 아쉬웠다. 도시에 살면서 어부를 꿈꾸는 ‘도시어부’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차가 출발해 눈을 감으니 바닷속으로 휘어진 팽팽한 낚싯대가 보였다. ‘언젠가 한 번쯤 낚싯대를 사이에 두고 고기와 힘겨루기를 해보리라.’
 
통영=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이경규#낚시#이덕화#마이크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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