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불평등은 자연법칙인가…꼬리칸 사람들이 묻는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8월 20일 06시 57분


‘설국열차’는 43만8000km에 달하는 길이의 전 세계 철길을 매년 한 바퀴씩 순환하는 초호화 유람열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열차는 새로운 세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인류 최후의 생존자다. 배우 송강호(오른쪽)와 그의 딸 역의 고아성(가운데), 크리스 에반스가 지옥 같은 혼란을 딛고 17년 동안 살아남은 인물을 그렸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는 43만8000km에 달하는 길이의 전 세계 철길을 매년 한 바퀴씩 순환하는 초호화 유람열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열차는 새로운 세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인류 최후의 생존자다. 배우 송강호(오른쪽)와 그의 딸 역의 고아성(가운데), 크리스 에반스가 지옥 같은 혼란을 딛고 17년 동안 살아남은 인물을 그렸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설국열차’

한정된 자원 속 끝없이 달리는 열차
‘사람이 넘쳐나면 모두가 굶어죽는다’
폭동과 살육 조장하는 앞 칸 사람들
그 불평등의 악순환은 언제 멈출까


“연못에 수련이 자라고 있다. 수련은 날마다 갑절로 늘어난다. 29일째 되는 날 연못의 절반이 수련으로 뒤덮인다. 만일 수련을 그대로 놔두면 30일째에는 연못이 수련으로 가득 채워진다. 결국 다른 생명체들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1972년 로마클럽이 내놓은 보고서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이다. 로마클럽은 서구의 과학 및 경제학 등 학자들과 기업인 등이 1960년대 후반 결성해 지구와 인류가 처한 위기와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인구가 날로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오염되는 등 지구가 맞닥뜨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음을 이들은 역설했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식량은 산술급수적,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로마클럽의 보고서는 그 170여년 전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1790년대 말 ‘미래사회의 개선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의 원리에 관한 연구-윌리엄 고드윈, 콩도르세, 기타 저술가들의 연구에 관한 논평’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펴냈다. 워낙 충격적이었던 내용 탓에 맬서스는 익명으로 초판을 내놓았다. 바로 그 유명한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증기기관과 기계의 발명으로 상징되는 산업혁명의 여파 속에서 당시 영국의 노동자 등 하층계급의 사람들은 비참한 삶의 환경에 놓여졌다. 또 다른 학자 윌리엄 고드윈과 콩도르세 등은 불평등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소득을 평등하게 나누거나 하층계급을 위한 사회복지 등을 주장했다. 하지만 토머스 맬서스에게 이들의 주장은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쳤다.

‘노동자 등 하층계급의 사람들은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아이를 더 낳으려 애쓴다. 덕분에 노동력은 늘어나지만 그 공급과정에서 과잉인구로 인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열악해진다. 노동계층의 과도한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욕을 절제해야 하지만 그들의 계급적 속성 때문에 한계가 있다. 질병과 전쟁, 재해와 기근 등을 통한 ‘종족보존과 번식’의 본능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물론 이들을 구제하고 돕기 위한 복지정책도 필요치 않다.

훗날 사람들은 토머스 맬서스의 이 같은 논리의 핵심을 다음의 문장으로 설명한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난 인구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지구온난화는 재난에 가까운 폭염의 원인으로 꼽힌다. 토머스 맬서스가 ‘인구론’의 핵심이론으로 나름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을 때 간과했던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역설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이 같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 79개국 정상은 2014년 7월1일 인공냉각제인 CW-7을 대량 살포했다. 세계적 논란 속에서 대기 상층권에 뿌려진 CW-7이 지구온난화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인류는 CW-7이 지구의 기온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급격하게 하강한 온도는 기어이 거대한 한파를 몰고 왔다. 지구는 새로운 빙하기에 접어들었고, 모든 생명체는 멸종했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폐쇄된 생태계…생존자들의 운명?

43만8000km에 달하는 길이의 전 세계 철길을 매년 한 바퀴씩 순환하며 지나는 초호화 유람열차 속에 오른 이들은 인류 최후의 생존자였다. 열차는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가 됐다.

사람들은 맨 앞 칸부터 꼬리칸으로 이어지는 열차에 각기 올랐다. ‘흐르는 물과 온기’로 가득한 앞 칸과 달리 꼬리칸에 몰려든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지옥 같은 혼란을 겪고 17년 동안 살아남았다.

끝없이 내달려야만 하는 열차의 생명은 쉼 없이 가동하는 엔진. 그래서 엔진은 성스럽다고 여겨진다. 모든 것을 온통 얼어붙게 한 추위에서 열차와 그 안의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은 질서라고 열차의 지배자들은 강조한다. 이들에게 열차의 각 칸을 채우는 사람들의 자리는 애초부터 정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어기거나 다른 칸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이 같은 질서를 정해준 것 역시 “성스러운 엔진”이었다. 윌 포드는 맨 앞 칸, 엔진칸에서 열차를 이끌며 새로운 ‘세계’가 된 열차의 수호자를 자임한다.

윌 포드는 “저주받은 쇳덩어리” 열차는 “폐쇄된 생태계”여서 “삶을 지속하려면 공기와 물, 음식 특히 인구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넘쳐나면 모두가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상의 균형”은 “생로병사의 원리”에 맡길 일이 아니라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각자 정해진 자리를 지켜 질서를 유지해야 함을 강조하는 한편 때마다 폭동을 은밀히 조장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게” 인구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차선책이라 믿기 때문이다.

정말 윌 포드야말로 엔진을 지키며 열차의 끝없는 순환의 질주를 가능하게 하는가. 자급자족 시스템 안에서 열차 안의 계급과 계층적 불평등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터, 이 체제를 유지하려는 자 역시 윌 포드일까.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열차 안 인구의 균형을 맞춰 삶을 지속하려는 방식에 있어서 꼬리칸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노인 길리엄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다. 새로운 빙하기 지구의 땅 위를 순환하는 열차 속의 불평등은 최후의 인류 생존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자연법칙’과도 같은 것이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을 것이다.

앞서 토머스 맬서스는 때로 ‘신의 섭리’를 말했다. 왕실 약제사로 일한 증조할아버지가 쌓은 상당한 재산의 혜택을 누린 집안에서 자라난 맬서스는 목사가 된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하지만 종교 활동보다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태생적 환경 때문이었을까. 맬서스는 태생으로부터 본래 ‘가진 자’들이었던 지주와 자본가들의 세상에서 이들의 태생부터 정해진 계급과 계층적 지위는 때로 ‘신의 섭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 맬서스의 눈에 ‘자연법칙’으로 체제를 유지하며 질주하려는 열차 안의 풍경과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까. 자신이 주장한 이론의 핵심적 요소가 그래도 적용되는 현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까. 맬서스가 그리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사회적 불평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불가피한 운명과도 같은 것일까.

분배와 성장, 복지와 포퓰리즘 사이에 벌어지는 끝없어 보이는 다양한 사회적 논쟁 속에서 여전히 경제적 불균형의 간극을 채우지 못하는 또 다른 열차는 오늘도 그 순환의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과연 그 엔진은 여전히 그렇게 성스러운가.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2013년 블록버스터 개봉작.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새로운 빙하기를 맞은 2031년의 지구. 그 땅 위를 순환하며 질주하는 열차 안 사람들만이 지구상 유일한 생명체로 남았다. 하지만 꼬리칸의 사람들은 비참한 환경 안에서 앞 칸 사람들의 안온한 삶을 욕망하며 반란을 일으킨다.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를 비롯해 존 허트,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배우들과 한국의 송강호, 고아성이 함께 연기를 펼쳤다.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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