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①] ‘동막골’ 노란 나비처럼…Welcome To Peace!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5월 1일 0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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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탄이 터지면서 곳간의 옥수수가 달콤한 강냉이로 튀겨져 눈처럼 내리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사진제공|필름있수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곳간의 옥수수가 달콤한 강냉이로 튀겨져 눈처럼 내리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사진제공|필름있수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마을 사람들을 지키는 남북 병사들
그들을 지키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
영화처럼, 우리도 웰컴 투!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 살둔마을. 여행플래너 최정규 씨 등이 펴낸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에 따르면 살둔마을은 ‘사람이 기대어 살 만한 둔덕’이라는 뜻을 지녔다. 마을은 한동안 민간에 은밀히 전해져 내려오던 일종의 예언서인 ‘정감록’이 ‘환란을 피할 수 있는 7곳’ 즉, ‘3둔 4가리’ 가운데 하나로 꼽은 곳이다(‘가리’는 계곡 속 넓은 터를 뜻한다). 살둔마을은 그 중 마을의 형태를 간직한 유일한 곳이라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은 적고 있다.

살둔마을과 비슷한 지형으로 역시 환란을 피할 수 있었던 곳,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의 부연마을이 있다. 마을은 한때 ‘가마소’라 불렸다. ‘가마솥처럼 생긴 깊은 연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살둔마을을 비롯한 ‘3둔 4가리’는 대부분 방태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부연마을도 오대산 두로봉 골짜기에 일찌감치 터를 잡았다.

이처럼 마을은 오랫동안 산으로 둘러 싸였다. 산이 품어놓은 그리 넓지 않은 대지 위에 살림살이를 꾸려온 마을에서 사람들은 긴 세월 옥수수와 감자를 심어 먹고 살았다. 산은 높아서 외부 문명의 손길은 마을까지 닿을 수 없었다.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환란을 피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지금이야 산촌체험마을 따위의 이름으로 호기심 가득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졌지만, 바깥세상 사람들이 마을의 존재를 알기까지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사진제공|필름있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사진제공|필름있수다

● 봄을 맞지 못한 병사들

마을에서 사람들은 가장 순박한 이웃의 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살았다. 자신들이 땀 흘려 일구는 밭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며 출몰해오는 멧돼지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이들이었다. 그 정과 걱정 사이에는 어떤 탐욕과 갈등도 존재할 리 없었다.

전란의 참혹함에 떨고 있는 바깥세상과도 무관한 삶이었다. 설령 전란의 소식이 전해진들, 본래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과 방식대로라면 그것은 대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실 마을은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바깥세상에 비쳤다. 이 공간을 적에게 내줬을 때 전란의 승자는 불을 보듯 뻔하다, 고, 각 적대적인 세력은 판단했다. 마을을 손에 넣지 못하면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추정했다. 마을은 한순간 군사기지가 되어 버렸다. 살둔마을 인근, 그 유명한 곰배령에서처럼.

갖은 들꽃이 무성한, 천혜의 환경으로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라 믿어지는 곰배령과 그 인근도 한때 군사적 요충지로 통했다. 그래서 이곳에선 때로 “파랗게 녹슨 탄환”과 “군화, 철모, 총알 등이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2017년 5월23일 자 한국일보) 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는 세력에게 마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일방의 폭격은 그렇게 감행됐다.

그곳, 마을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은 끝내 봄을 맞지 못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사진제공|필름있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사진제공|필름있수다

● 평온함을 꿈꾼 나비의 날갯짓

이전 가을날의 치열한 전투에서 낙오한 병사들은 서로 적군인 채 마을로 스며들었다. 결코 서로를 용납할 수 없었던 폭력의 진앙 위에서 이들은 서로를 겨눴다.

그들 사이에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병사들은 그저 자신들의 궁박한 살림살이에 잠시 들른 손님들일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순박함은 병사들이 들고 온 소총과 수류탄을 한낱 무쇠덩어리로 녹여 냈다. 총은 거두어졌고, 수류탄은 어이없게도 곳간에 쌓인 옥수수를 부풀려 달콤한 강냉이로 튀겨내는 데 소용됐다.

병사들도 마을 사람들이 되어 갔다. 그리고는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쌓인 눈 가득한 강원도 함백산 정상에서 눈처럼 쏟아지는 포탄을 온몸으로 맞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병사들은 그저 묵묵히 위험을 몸으로 막아야 하는 것을 자신들의 마지막 임무로 생각했다. 그럼으로써 지켜내야 할 마을의 평온함만이 오롯한 목표라 여겼다. 그것만이 전란과는 무관한, 혹은 전란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의 순진무구한 평온함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병사들은 믿었다.

그래서 맨몸으로 나설 수 있었다.

한 마리 나비가 날아든 건 그때였다. 희미한 노란 빛을 내는 나비는 세상일에는 무심한 듯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아왔다. 날아온 나비는 마을에 스며들어 피곤에 절어 깊이 잠든 병사들 사이를 오가며 평온의 기온을 불어넣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사진제공|필름있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사진제공|필름있수다

● 꽃으로 녹여낸 철조망

나비는 때로 두 마리로, 세 마리로, 네 마리로…, 수천의 날갯짓으로 불어나곤 했다. 아름다운 무리로 나비들은 그 힘을 다했다. 나비들은 그 연약한 날갯짓으로 사람들의 세상일에 끼어들려 했다. 그것은 또 대단히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꽃들의 사랑을 전하는’(노래 ‘나비’ 중에서, 윤도현밴드) 나비들이 그 사이를 날아다니지 않고서 소박한 들꽃은 결코 본래 야생의 화사한 건강함으로 피어날 수 없다. 나비의 힘으로써 봄꽃은 피어날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하늘 아래 더없이 천부적인 순박함을, 마을 사람들의 땅 위 더할 나위 없는 태생의 인간적 삶을 지켜주려 했던 병사들은 기어이 눈 쌓인 산으로 올라 폭격기가 쏟아내는 포탄을 맞아들였다. 애초 부여받았던 이념과 사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순박함과 인간적 삶을 영위하려는, 그것이 당연한 하늘과 땅의 이치임을 믿고 살아왔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병사들과 나비의 운명은 한 가지였다.

2018년 4월27일 밤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 외벽에도 한 마리의 나비가 날아들었다. 본래 하나였던 땅을 둘로 가르고 그 사이에 무쇠의 잔혹한 무기를 앞세운 적대적 철조망 가시가 들어섰지만 나비는 개의치 않았다. 너울너울 날갯짓으로 그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어느새 가시 위에 꽃이 피었다. 나비는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로 불어나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의 꽃을 피워냈고, 꽃이 되었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대한 탐욕으로 오랜 세월 갖은 무력의 침입이 잦았던 반도에도 봄은 그렇게 찾아왔다. 아직은 완연하지 않더라도, 그저 한 떨기 피어난 꽃 한 송이만으로도 넉넉히 따스한 봄. 꽃은 언젠가 덩굴을 이뤄 철제의 가시를 녹여내며 거대한 평화의 기온으로 온 천지를 감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야 비로소 한 마리 나비의 연약한 날갯짓이 가져다 준 평온함의 소중함을 기억할, 또 기억하려 할 터이다.

‘Welcome To Peace!’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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