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미친 세상에도 희망은 존재…퓨리오사들이여 일어나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3월 9일 0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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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맥스와 퓨리오사(오른쪽)는 무자비한 폭압의 세상에 연대와 공감의 힘으로 맞서는 전사다.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맥스와 퓨리오사(오른쪽)는 무자비한 폭압의 세상에 연대와 공감의 힘으로 맞서는 전사다.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폭압서 벗어나 자유 향한 무한 질주
처절한 투쟁 통한 체제 전복의 쾌감
퓨리오사와 다섯 여자들 ‘연대의 힘’


“희망 없는 세상, 미친 놈만 살아남는다!”

정말 그럴까. 미치지 않고는 희망이 사라진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아니, 살아남지 못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없기에, 희망을 찾아 나서기 위해 미칠 만큼 절박함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될 터이다. 희망만이 서로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타인과 함께 서로를 구원하고, 결국 세상과 인간을 구해내는 길, 희망을 찾아 나선 이들의 힘이다. 구원은 곧 모두가 지닌 존엄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를 다시 찾아 나설 수 있는 힘 역시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여기 주인공들은 말하고 있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임모탄 조.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임모탄 조.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임모탄 조

근미래, 인류의 새로운 생존 공간은 시타델이다. 앞서 인간의 탐욕은 핵전쟁을 불러왔고, 인류는 공멸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곳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생존수단은 ‘아쿠아 콜라’라 불리는 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그랬듯, 어쩌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 그럴 수 있을 듯, 생존자원은 소수의 권력이 장악하고 있다.

이 권력을 움직이는 자, 임모탄 조이다. 그는 물을 장악해 인류를 지배하며 시타델을 통치하는 독재자이다. 시타델은 그에게는 마치 왕국과도 같다. 물을 제한적으로만 공급함으로써 인류에게 자신의 권력에 굴종하기를 강요한다. “아쿠아 콜라에 중독되지 말라”는 말은 그가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절대화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인류 역사 속 존재했던 숱한 독재자들처럼 임모탄은 폭압적 가부장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여성은 오로지 종족번식의 수단으로만 보일 뿐이다. 독재자에게 권력이란 절대적 이데올로기로 포장한 사유화한 힘이며, 체제를 영원히 유지하고픈 욕망은 가부장의 무자비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무감한 억압으로 드러난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퓨리오사, 그리고 다섯 여자

하지만 권력이란 온전히 독재자 혼자만이 견고히 지켜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독재의 가치를 적극 공유하거나, 적어도 생존의 논리로써 그에 부응할 줄 아는 미필적 고의의 동의 혹은 굴종에 동참하는 자들의 존재가 아니고서는 체제를 유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시타델의 사령관 퓨리오사는 독재자와 그가 지배하는 체제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권력일 수도 있다.

그녀는 전쟁의 처절함을 드러내려는 듯 한 쪽 팔을 잃어버렸다. 삭발한 머리는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한 채 무자비한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욕망에서 얼핏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독재자 임모탄의 폭압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새로운 이상향을 향해 돌진한다. 그곳은 자신의 고향인 녹색의 땅이다. 무너져 버린 공동체를 바로 세우려는 치열한 투쟁의 시작이다.

녹색의 땅을 향해 질주하는 퓨리오사의 전투트럭에 오른 이들은 다섯 명의 여자들이다. 임모탄의 폭압적 가부장에 맞서는 또 하나의 세력이다. 앞서 임모탄의 여인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오로지 번식의 수단으로만 이용당해왔다. 폭압적 가부장 체제를 유지하며 영속화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독재자에게 이들의 이탈과 저항은 권력의 약화를 말해주는 것이다.

더 이상 대를 이을 수 없게 될 두려움에 처한 폭압의 가부장은 더욱 더 단말마적 폭압으로 닥쳐오지만, 그럴수록 체제의 멸망과 단절을 꾀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여성의 저항도 견고해진다. 목숨의 위태로움 속에서 자신의 임신한 배를 폭압의 무기 앞에 당당히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임모탄의 욕망을 위해서만 풀어 헤쳐지는 정조대를 보란 듯 걷어 찰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변혁에 대한 단단한 믿음에서 나온다.

퓨리오사와 다섯 여자들은 그 저항의 와중에 부발리니의 할머니 전사들을 만난다. ‘씨앗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부발리니 전사들 역시 녹색의 땅이라는, 희망의 꽃과 열매를 피우고 키워낼 터전에 뿌리박힐 씨앗을 꿈꾸고 있다.

이들의 단단한 믿음은 곧 연대와 공감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가치가 된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들.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들.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맥스와 눅스 그리고 조지 밀러

아내와 딸을 잃고 피폐해진 세상을 떠돌던 맥스는 임모탄의 노예가 됐다. 그의 피는 임모탄의 맹목적 추종자이자 전사이지만, 핵전쟁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질병을 앓는 ‘워보이’ 눅스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데 쓰인다. 폭압적 가부장의 체제를 이어가려는 독재자에게 남성성은 그렇게 착취의 도구로써만 작동한다.

단, 그 효용성이 사라지는 순간 독재자에게 남성성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이때 맥스와 눅스를 보듬어 안는 것, 퓨리오사와 다섯 여자와 부발리니 전사들의 연대이다. 그래서 연대와 공감은 이들에게 또 다른 인류 구원의 가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안긴다. 이들이 이젠 사라지고 만 녹색의 땅이라는 이상향이 아니라 무자비한 체제가 여전히 굳건해 보이는 시타델이라는 현실로 다시 돌아가기를 다짐하는 것도 바로 그 연대와 공감의 힘 덕분이다. ‘희망 없는 세상, 미친 놈만이 살아남는다!’고 했지만 미칠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한 구원과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연대와 공감을 이끈 이들의 승리는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는 동안 노장의 연출가 조지 밀러 감독은 단 한 장면에서도 그 연대와 공감에 나선 이들의 육체를 관음의 카메라로 훑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세상을 꿈꾸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헤쳐 나가려는 주인공들의 피곤하고도 처절한 투쟁에 다시 힘을 부여하며 퓨리오사와 연대와 공감의 힘으로 손잡은 이들로부터 맥스를 떠나보낸다. 세상의 희망과 변화에 대한 간절하고 단단한 믿음을 지닌 이들이야말로 또 다시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처럼!

1911년 3월8일 1만5000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미국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참혹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에 나서며 자유를 외쳤다. 이후 110년이 지난 오늘,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분노의 도로로 나서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달라져 간다.

■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멜 깁슨이 주연한 ‘매드맥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조지 밀러 감독이 1979년 1편, 1981년 2편, 1985년 3편에 이어 2015년 30년 만에 다시 연출했다. 하지만 이전 세 작품을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토리를 갖췄다. 핵전쟁 이후 인간들을 통치하는 독재자 임모탄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다, 임모탄의 사령관이었지만 탈출한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다섯 여자들, 그리고 아들과 딸을 잃은 맥스의 처절한 투쟁이 강렬한 록비트의 음악과 실감 나는 아날로그 액션에 실려 또 다른 쾌감을 안긴다. 톰 하디가 새로운 맥스로 나서고 샤를리즈 테론이 여전사의 투혼을 발휘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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