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들의 수다①] 최희서 “다음엔 한국사람으로 상 받고 싶어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2월 8일 06시 57분


배우 최희서는 데뷔하고 8년 동안 착실하게 실력을 닦아온 덕분에 올해 대부분의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상은 좋지만 받을 때마다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는 그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우 최희서는 데뷔하고 8년 동안 착실하게 실력을 닦아온 덕분에 올해 대부분의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상은 좋지만 받을 때마다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는 그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박열’로 각종 영화제 신인상 싹쓸이, 최희서

8년 동안 긴 무명 생활…내 문제 자문
‘동주’ ‘박열’ 일본인 연기로 인생 역전

차기작 ‘아워 바디’ 첫 눈에 반한 작품
복근 만드려고 100km 완주까지 했죠

여형사나 검사처럼 강한 캐릭터 끌려
우상 문소리 선배님과 연기하는게 꿈

배우 최희서(30)는 올해 ‘대운’을 맞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상황은 다르다. 올해 한국영화를 결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최희서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열리는 각종 영화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고 있다. 6월 개봉한 ‘박열’에서의 활약 덕분이다. 10월 열린 제54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상과 여우주연상 동시수상을 시작으로 제38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17회 디렉터스컷어워즈 ‘올해의 새로운 여자배우상’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스크린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결실이다. 누구보다 올해를 알차고 값지게 보낸 최희서를 ‘여기자들의 수다’에 초대했다. ‘박열’이 개봉한지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시상식 무대에 오르내리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상복’이 터졌다.


“이렇게 한꺼번에 상을 많이 받은 적이 없어서 얼떨떨하다. 첫 시상식 땐 뭐가 뭔지 잘 몰랐다. 정신이 한 번에 나간 기분이었다.(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마냥 기쁘기보다 뭔가 이상하다. 고민이 더 많아진다고 해야 할까.”

-기쁨을 만끽해야할 지금, 고민이라니.

“음…. 5년 전쯤 상을 받았다면 정말 기뻤을 것 같다. 지금은 앞으로 뭘 해야 하나 더 걱정이다. 아직 보여준 게 없지 않나. 무엇보다 ‘한국사람’ 캐릭터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 하하!”

최희서를 스타덤에 올린 영화 ‘박열’은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박열의 이야기다. 최희서는 박열의 동지이자 일본인 연인 후미코 가네코를 연기했다. 영화가 공개된 뒤 ‘진짜 일본 여배우이냐’는 물음이 계속될 정도로 완벽한 일본어 구사는 물론 그 시대 진취적 여인상을 그려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출연한 영화 ‘동주’에서도 일본인 역할을 맡았다. 후한 평가로 잇따라 수상 소식을 전하는 지금, 최희서가 굳이 “한국사람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감추지 않는 이유다.

-연락 한 번 없다가 갑자기 전화 오는 사람도 많겠다.

“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에 문자메시지로 답하고 전화도 다 받았다. 상을 받을 때마다 내 마음은 무거워지는데 부모님은 정말 순수하게 좋아하신다. 데뷔한지 8년이 됐는데 ‘박열’로 알려지다 보니 ‘그동안 뭐하다 이제 나왔느냐’는 말도 들었다. 심하게는 ‘연기자로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도 들어봤고.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도 연락 와서 ‘잘 될 줄 알았다’고 응원해주더라. 감사한 마음도 있고 좀 씁쓸한 마음도 든다.”

-영화 시나리오도 많이 받고 있나.

“‘박열’ 끝나고 3편정도 받았다. 그 중에 꼭 해야겠다싶은 영화가 ‘아워 바디’였다. 아주 평범한 여자의 이야기인데 안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8년 동안 고시 준비한 고시생 이야기이다. 우연인지 나도 데뷔한지 8년째이고. 공감이 갔다.”

-새 영화 때문에 운동에 푹 빠졌다는데. 그래서인지 건강해 보인다.

“맞다. 여주인공이 고시에 실패하고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동시에 운동도 한다. 운동으로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시나리오 지문에 ‘복근이 생겼다’는 문장이 나왔다. 아! 복근을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그 한 문장 때문에 한 달 반 동안 트레이닝까지 받았다. 하하! 오래 달리기도 시작해서, 5km부터 차츰 거리를 늘려가는 방법으로 훈련했다. 촬영 전까지 100km 완주를 목표로 했고, 해냈다.”

-100km?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엄마도 나더러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라.(웃음) 목표를 세우고 나면 도움이 된다. 그래도 100km는 힘들긴 힘들더라.”

배우 최희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우 최희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최희서는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 때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해 연기를 시작했지만 ‘박열’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기회는 많지 않았고 원하는 연기도 마음껏 하지 못했다. 그 때 최희서는 대학 친구들과 연극 연합동아리를 결성해 연극을 무대에 올리거나 독립영화를 촬영하면서 ‘무명배우’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더 넓은 세상을 꿈꾸기도 했다.

“‘킹콩을 들다’가 첫 영화인데 과분할 정도로 분량이 많았다. 촬영장에서 내 자신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정통 연극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국 로열연극아카데미 시험을 준비했다. 1년 동안 분기별로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3차까지 통과했지만 마지막에선 탈락했다. 시간도 많이 필요했고 영국에 더 남아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엔 비용도 엄청났다. 탈락했다는 건 한국으로 돌아가서 더 경험하고 열심히 하라는 의미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영국으로 가지 않길 잘한 것 같다.”

-주관이 확실해 보인다. 언젠가 인정받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나.

“확신 보다는 그냥 막연하게 믿었다. 평범한 말일지 몰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니까. 처음에 ‘동주’에 캐스팅됐을 때도 그렇다. 지하철에서 연극 대본 연습하는 내 모습을 건너편 자리에서 우연히 본 신연식 감독님이 나에게 연락 한 번 달라고 해서 출연까지 하게 된 거니까. 그 기회가 ‘박열’까지 이어졌고. 뭐 하나라도 열심히 하고 있다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고 믿는다.”

-8년간 무명배우나 다름없었다.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을 텐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준비한 연극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데 돈이 정말 없어서 대학로에 있는 공연장을 못 구하고, 조금 떨어진 한성대입구까지 간 적이 있다. 그 때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내일 모레면 나도 서른인데 이렇게 힘들게 연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자문했다. 대체 뭐가 잘못돼서인지 찾아야 했으니까. 내가 덜 매력적이라서? 키가 작아서? 하하! 나한테 있는 문제를 찾으려 했다.”

-만약 연기를 안 했다면?

“아마도 영문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지 않을까. 회사는 못 다녔을 거다.”

-입사시험도, 면접도 강할 것 같은데.

“고집이 세서 조직생활은 어려울 것 같다. 내 의견은 꼭 말해야 하는 성격이라 조직생활에 적합하지 않다. 하하! 공부를 계속 하든, 글을 쓰든 했을 거다.”

-포털사이트에 ‘최희서’를 검색하면, ‘몸매’라는 연관검색어도 나오더라.

“왜 그렇지?(웃음) 시상식 드레스 때문인가? 얌전한 것만 입었는데.”

-성형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안 했다. 그래도 생각해본 적은 있다. 연기 시작하고 턱 수술하라는 권유도 받아봤고. 병원을 찾아가본 적도 있는데 수술과정도 만만치 않아서, 하진 않았다. 신기하게도 최근 만난 한 드라마 감독님이 ‘턱의 느낌이 정말 좋다’고 하시더라.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도 잘 해낼 것 같다고. 역시, 수술 안하길 잘했다.”

-주량은?

“나쁘지 않다. 하하! 주변에 워낙 잘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잘 먹는다고 못 하겠다. 처음으로 예능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는데 tvN ‘인생술집’이다. 녹화 전 작가님이 주량을 묻기에 ‘소맥 6∼7잔 마신다’고 했다. 맥주는 배불러서 취할 때까지 마시진 않고, 소주는 좋아하지 않아서 둘을 섞은 소맥을 마신다.”

배우 최희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우 최희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최희서에게 ‘동주’와 ‘박열’의 이준익 감독은 특별한 존재다. 나이차가 크고, 감독과 연기자라는 차이도 있지만 두 사람은 요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친구’ 사이다. 얼마 전 이 감독은 최희서에게 ‘여자 이야기를 써보라’고도 권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직접 여러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온 최희서는 “요즘은 미혼모 이야기인 장편 시나리오를 틈틈이 쓰고 있다”며 “이상하게 내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작가지망생일 때가 많다. 무의식적으로 내 심리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며 웃었다.

-혹시 선망해온 배우가 있나.

“되게 많다. 특히 송강호 선배님! 출연한 영화를 다 챙겨보면서 나도 과연 저런 배우가 될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해봤다. 중학생 때는 설경구와 문소리 선배님이 나온 ‘오아시스’를 몰래 봤다. 나중에 꼭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설경구, 문소리 선배님이다.”

-신인상을 받았으니 이제부터 중요할 텐데.


“자주적이고 의지가 강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작품도 내 성격이나 취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여형사나 검사처럼 강단 있는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악역도 흥미롭다. 강한 캐릭터에 끌린다. 액션도 원했는데 김옥빈의 ‘악녀’를 보고, 포기해야하나 싶더라.”

-드라마에서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바라는 만큼 제의가 많은 게 아니라서.(웃음) 2011년에 MBC 일일드라마 ‘오늘만 같아라’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 때 필리핀에서 시집 온 외국 며느리 역할이었다. 그러니 한국사람으로 출연하고 싶은 내 마음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하하!”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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