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사사로운 이야기] 과도하게 친절한 범죄 묘사…피해자 여성에 대한 인권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21일 06시 57분


배우 장동건이 새로운 무대로 삼은 첩보액션 ‘V.I.P.’의 촬영현장 모습. 왼쪽은 연출자 박훈정 감독. 사진제공|영화사 금월
배우 장동건이 새로운 무대로 삼은 첩보액션 ‘V.I.P.’의 촬영현장 모습. 왼쪽은 연출자 박훈정 감독. 사진제공|영화사 금월
브이아이피·청년경찰 범죄 장면 아쉬워

범죄스릴러 장르의 한국영화들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엽기적인 범죄를 ‘현실 반영’이라는 허울로 답습하고 있다. 점차 높아지는 수위에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는다. 인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커녕 캐릭터의 잔혹성을 묘사하는 데만 집중하는 그 ‘친절한 재연’을 보고 있노라면 객석에 앉아 그대로 ‘고문’을 당하는 기분마저 느낀다.

23일 개봉하는 박훈정 감독의 영화 ‘브이아이피’는 최근 나온 한국영화 가운데 잔혹성 면에서는 단연 압도적인 수위를 자랑한다. 배우 이종석이 연기한 연쇄살인마는 사이코패스가 그렇듯 감정의 동요가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언제나 피해 당사자는 힘없는 여성이다.

수십 명을 이유 없이 살인한 것으로 설명되는 그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나체의 여성이 당하는 육체적 고문 상황을 잔인할 정도로 상세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여성 관객은 물론이고 남성 관객도 견디기 어렵다는 반응이 시사회를 통해 나왔다. 소수의 의견이지만, 범죄 묘사 자체만 놓고 보면 스너프 필름(실제 폭력·살인 등 장면을 촬영해 불법으로 유통하는 영상)같다는 반응도 있다.

박훈정 감독은 극악한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인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쓰고, 출세작 ‘신세계’를 통해 잔혹한 범죄의 세계를 그려 많은 마니아 관객을 확보한 연출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내놓은 영화들에 비해 이번 ‘브이아이피’는 여성을 상대로 하는 범죄를 다루면서도 그 피해 대상에 대한 어떠한 인간적인 시선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탓인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여럿인데도 보는 입장에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

4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청년경찰’이 못내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도 비슷하다. 열정으로 뭉친 경찰대생 박서준, 강하늘의 성장을 보이기 위한 장치로 납치 여성을 상대로 하는 무자비한 범죄를 택했다. 심지어 영화는 난자 불법 매매 등 이른바 ‘레드마켓’ 범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자세히 묘사한다.

여름 빅시즌을 겨냥한 상업영화의 재미에 몰두한 감독들의 비인권적 시선이 적나라하게 엿보이는 단면들이다. 가장 많이 제작되는 장르 중 하나인 범죄스릴러를 다루는 감독과 제작진의 시선이 이런데도, 여배우가 출연할 영화가 없다고 지적하는 일은 왠지 공염불 같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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