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뻔한 反日영화” “강제징용 문제 관심 불러일으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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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 논란의 영화 ‘군함도’
평론가-관객-기자 4인 방담

영화 군함도는 실제론 벌어지지 않았던 대규모 탈출극과 총격전을 그리느라 군함도의 역사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과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로 군함도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냈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사진은 강제 징용된 조선인 광부 최칠성 역으로 출연한 배우 소지섭.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군함도는 실제론 벌어지지 않았던 대규모 탈출극과 총격전을 그리느라 군함도의 역사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과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로 군함도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냈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사진은 강제 징용된 조선인 광부 최칠성 역으로 출연한 배우 소지섭.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일제강점기 하시마(端島) 탄광에 징용된 조선인 소재의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는 개봉 닷새 만인 30일 약 400만 명의 누적 관객을 동원했다. 역대 최다 관객 ‘명량’에 견줄 만한 흥행 속도다. 그러나 온라인 리뷰는 대체로 냉랭하다. 한 포털 사이트의 누리꾼 평점은 10점 만점에 평균 5점이 안 된다(관객 평점은 7점대).

핵심은 영화의 ‘국뽕’(배타적이고 지나친 국수주의·민족주의를 비하하는 속어) 논란이다. 심지어 포털 검색창에 ‘국뽕’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군함도’가 저절로 뜰 정도다. 일본 관방장관과 한국 외교부 대변인까지 나서 각각 ‘이 영화는 창작물’ ‘역사적 사실이 바탕’이라고 설전을 주고받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대학원생 곽지윤 씨, 조종엽 장선희 기자(왼쪽부터)가 ‘논란의 영화 군함도, 나는 이렇게 봤다’를 주제로 28일 방담을 나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정지욱 영화평론가, 대학원생 곽지윤 씨, 조종엽 장선희 기자(왼쪽부터)가 ‘논란의 영화 군함도, 나는 이렇게 봤다’를 주제로 28일 방담을 나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시비도 지속됐다.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이 영화는 29일에만 2019개 스크린에서 1만808회 상영(상영 점유율 55.8%)됐다. 영화 ‘군함도’에 대해 정지욱 영화평론가(50), 관객 곽지윤 씨(27·대학원생), 조종엽 장선희 문화부 기자가 28일 영화 속 다양한 논란을 짚어봤다(기사에 스포일러 있음).

▽곽지윤=보는 동안 크게 지루하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봤던 상투적 요소들로 가득했어. 딱 흥행만 노린 영화 같다고 할까?

▽정지욱=전형적인 인물, 선악 구도로 상업영화의 전형성을 보여준 거지. 감독의 위상을 생각하면 범작 정도? 최칠성(소지섭)-오말년(이정현)의 러브라인, 이강옥(황정민)-소희(김수안)의 부녀애가 다양한 연령에 어필할 수 있고, 출연 배우 송중기(광복군 소속 특수요원 박무영 역)의 인기를 고려하면 흥행은 성공할 듯.

▽조종엽=도입부 하시마 탄광 갱도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거기서 끝이었어. 온라인에 ‘뻔한 반일영화’란 혹평이 상당해. 군함도라는 소재만 가져왔을 뿐 역사적 진실과 강제징용자의 고통 표현은 뒤로한 채, 허구인 대규모 탈출극과 총격전만 부각했다는 거지.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

▽정=내 주변 반응은 괜찮던데? 다만 인물의 변화가 예측 가능하고, 그마저도 ‘툭툭 끊어진다는 느낌’이 들더라.

▽장=‘나쁜 조선인’을 넣어서 이분법을 넘어서려 했다는데, 그 때문에 강제동원의 본질적 주체가 일제라는 점이 모호해졌다는 의견도 있더라.

▽조=이분법을 넘어서려면 ‘나쁜 조선인’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착한 일본인’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일본인 노무자가 조선인 탈출을 방관하는, 딱 한 장면 나오더라.

▽장선희=
그랬다면 욱일승천기를 찢는 장면 같은 데서 관객이 통쾌함을 느끼겠어?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장기를 잘 살린 상업영화지, 다큐멘터리는 아니잖아. 일부 혹평은 류 감독의 작품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 것 아닐까?

▽곽=박무영이 일본인을 단칼에 목 베는 장면은 어땠어? 너무 전형적이어서 실소가 나오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어.

▽조=광복군 요원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관동군이나 전국시대 사무라이 같더라. 그렇게 적과 닮은 모습이 거북했어.

▽장=나는 좋았는데? (일동 웃음) 카타르시스를 주잖아.

▽조=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각 독립운동 세력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며 윤학철(이경영)을 구해오라고 지목하는데, 그 정도의 인물을 ‘민족의 배신자’로 묘사하는 건 말이 안 돼. 류 감독 영화가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번에는 심한 듯해.

▽정=류 감독이 커다란 틀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되 내용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고 했잖아. 그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장=하지만 류 감독도 실제 역사를 모티브로 했다고 분명히 했는데, 일본 정치인이나 극우 매체가 ‘날조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뻔뻔한 일이야.

▽조=홀로코스트 소재 영화를 보면 보편적 울림을 갖는 게 많잖아.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장벽 세우고 하는 현실 문제가 있는데도 그런 영화 보면 유대인 수난사에 동정적이게 된다고. 그런데 식민 지배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일본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손잡고 ‘군함도’ 보러 가자고 할 수 있을까?

▽정=일본 관객에게 보이기에는 일본어 대사부터 완성도가 떨어져.

▽곽=극장에서 오전 10시 45분, 11시, 11시 20분…, 이렇게 계속 ‘군함도’만 틀더라.

▽정=한 영화가 스크린을 2000개 넘게 차지하는 건 거의 폭력 수준 아닌가. 한 800∼1000개 스크린만 해서 오래 상영해도 될 텐데.

▽장
=류승완 감독한테 일본인까지 설득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아.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 더구나 군함도를 모르는 국내 관객도 태반일 텐데, 강제징용 문제에 관심을 갖게 했잖아? 그것만으로도 점수를 주고 싶어.
 
정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영화 군함도#반일영화#강제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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