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정우 “피켓들고 맨땅 헤딩, 인생이 달라졌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3월 7일 0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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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일러스’ 속 유일한 한국인 배우 남정우는 3년을 외롭게 기다린 끝에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무작정 뛰어드는 데 물론 겁이 났지만 “얻고 싶으면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 연기를 향한 열정이 그만큼 뜨겁다는 걸 증명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영화 ‘사일러스’ 속 유일한 한국인 배우 남정우는 3년을 외롭게 기다린 끝에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무작정 뛰어드는 데 물론 겁이 났지만 “얻고 싶으면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 연기를 향한 열정이 그만큼 뜨겁다는 걸 증명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영화 ‘사일런스’로 할리우드 진출 남정우

무작정 타이페이 현장 찾아가 제작진 마음 돌려
자신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또 다른 도전
“도전은 두렵지만 얻기 위해선 포기할 수 없더라”


“그저 계획을 세웠고, 실행했을 뿐이다.”

혼자 힘으로 할리우드 대작의 출연 기회를 얻은 배우. 맨땅에서 시작해 세계 관객 앞에 나선 연기자. 하지만 이름과 얼굴이 여전히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연극배우 남정우(35)의 이야기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하고 리암 니슨,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한 ‘사일런스’가 2월28일 개봉해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남정우는 영화에 출연한 유일한 한국인 배우. 2년 전 대만 타이페이에서 이뤄진 촬영에 혈혈단신 참여해 기회를 얻었다. 남정우의 할리우드 진출기는 2년 전 처음 공개(스포츠동아 2015년 2월24일자)됐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인 그는 7전8기 도전으로 마침내 꿈을 이룬 배우로 세상에 알려졌다.

신학대 재학 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한 남정우는 2001년 소설 ‘침묵’을 무대에 올리면서 받은 기억과 감동을 10여년간 잊지 않았다. 17세기 일본 선교를 떠난 세 신부의 이야기였다. 2006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해 활동하면서 외신을 통해 ‘침묵’의 영화화 소식을 접했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꼭 출연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이후 남정우의 여정은 감독을 만나기 위해 2013년 미국 뉴욕으로, 2015년 타이페이로 이어졌다.

“영화 촬영지인 타이페이로 무작정 떠나는 게 맞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후회는 남길 수 없어, 갔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 내가 미친 짓을 하고야 말았구나’ 싶더라.”

배우 남정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우 남정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남정우는 하루 숙박료가 1만원인 8인실 숙소부터 잡았다. 피켓에 ‘스콜세지 감독을 만나러 한국에서 왔다’고, ‘출연하고 싶다’고 적어 촬영장 입구에 섰다. 보름이 지날 무렵 매일 피켓을 든 그를 유심히 본 현장 스태프가 제작진에 그를 소개했고, 출연 기회를 따냈다.

“10회차에 참여했다. 매번 즐겁지는 않았다. 숙소에서 대기하다 끝난 날도, 검댕이 분장했다가 허탕치고 돌아간 날도 있었다. 누구도 내게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극의 내용을 익히 알고 있던 덕분에 몸으로나마 상황을 극대화하는 연기도 해봤다. 하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추억도 생겼다. “첫 촬영 때 감독에 다가가서 당신을 만나려고 뉴욕 맨하탄 110번지(영화사 주소)를 여러 번 찾아갔다고 말했다. 감독이 ‘정말이냐’면서 ‘내일 또 보자’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더라.”

그 뒤 감독에게 편지를 썼다. ‘사일런스’가 자신에게 얼마나 각별한지, 기회를 줘 감사하다고 적었다. 보디가드와 동행하는 감독 곁으로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촬영장에서 사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제지도 받았다. 마지막 촬영 때 기회가 왔다. 도시락을 먹고 있던 감독에게 편지를 건넸다.

“나중에 감독 재킷에 내 편지가 꽂힌 걸 봤다. 분명 읽었을 거다. 감독님은 현장에서 늘 웃으면서 ‘판타스틱’이라고 외친다. 문화적 차이겠지만 막내 스태프까지 감독을 ‘마틴’이라 부르더라. 누구나 자유롭게 모니터 화면도 볼 수 있다.”

남정우의 도전은 ‘사일런스’ 출연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대만으로 향한 자신의 여정과 촬영 전후 모습을 담은 111분 분량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제목은 ‘파인딩 스콜세지’. 감독을 찾아 나선 무명배우의 눈물겨운 분투가 고스란히 담겼다.

“처음엔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어 시작했다. 녹음, 편집, 자막 작업도 혼자 했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출품했지만 연락이 오진 않았다. 하하!”

남정우의 연기는 계속된다. 2인극 ‘형제의 밤’으로 무대에서 주목받았고, 지난해 KBS 1TV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도 출연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보통사람’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도전이 두렵지 않았느냐고. 나도 겁이 났다. 거절당하는 게 정말 두렵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얻고 싶으면 도전해야 하니까.”

그에게 꿈을 물었다. “하정우 말고 남정우? 하하! 차기작을 걱정하지 않는 배우가 내 목표다.”

● 남정우

▲1982년생 ▲초중학생 시절 배드민턴 선수, 1993 년 충북 대표 ▲2008년 감리교신학대 신학과 졸업 ▲대학 연극 동아리 ▲2006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 ▲2008년∼2010년 연극 ‘명성황후’, ‘이’, ‘개똥벌레’, ‘형제의 밤’ 등 ▲2015년 영화 ‘빅매치’ ▲ 2016년 KBS 1TV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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