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GD, 룰을 깨다①] 상식 뒤엎는 시도, 혁명인가 이단인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6월 23일 06시 57분


‘옥자’(위사진)는 ‘영화는 극장상영을 전제로 한다’는 일반적 인식을 무너뜨렸고, 지드래곤은 ‘음반은 노래가 담겨야 한다’는 상식에 질문을 던졌다. 사진제공|넷플릭스·YG엔터테인먼트
‘옥자’(위사진)는 ‘영화는 극장상영을 전제로 한다’는 일반적 인식을 무너뜨렸고, 지드래곤은 ‘음반은 노래가 담겨야 한다’는 상식에 질문을 던졌다. 사진제공|넷플릭스·YG엔터테인먼트
《영화 ‘옥자’와 가수 지드래곤의 새 앨범 ‘권지용’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옥자’는 29일 미국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온라인 플랫폼과 극장에서 동시 공개되지만 이에 맞서 국내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상영을 거부하고 있다. 지드래곤의 앨범은 휴대용 저장매체 USB에 음원을 수록하지 않은 채 다운로드 링크 방식을 담아 앨범으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엇갈린 시선을 자아냈다.

하지만 ‘옥자’와 ‘USB 앨범’은 이제 더 이상 논란거리로만 남지 않는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미래의 유통방식으로서 새로운 화두를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스포츠동아가 ‘옥자’와 ‘권지용’에 주목하는 이유다.

LP부터 ‘USB앨범’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문명이 이끈 음악매체의 변화를 훑는 것도 마찬가지다. 방송가 역시 이 같은 디지털 콘텐츠와 손잡지 않고서는 더 이상 생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LP로 상징되는 아날로그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음도 목격한다.》

■ 극장·온라인 동시 상영 논란 ‘옥자’

극장가 룰 깨는 유통에 멀티플렉스 3사 보이콧
29일 개봉 앞두고 예매율 2위…영화계 큰 관심


영화는 큰 스크린을 통한 극장 상영을 전제로 제작한다‘고’ 누구나 인식해왔다. 그러나 ‘옥자’는 이를 단박에 무너뜨렸다. 넷플릭스라는 세계 최대 규모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업체가 제작비를 투자하고 그 온라인 플랫폼 상영을 조건으로 당초 제작됐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에서는 극장에서도 상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CJ CGV 등 국내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들은 “극장 개봉 및 상영 뒤 일정기간(홀드백)이 지나 온라인 등 부가시장으로 가는 유통질서를 해칠 우려가 크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옥자’는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이 아닌 서울 대한극장과 서울극장 등 전국 79개 극장 100여개 상영관에서 관객을 맞는다.

논란 속에서 과연 ‘옥자’는 얼마나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29일 개봉을 앞둔 ‘옥자’는 22일 오후 3시 현재 ‘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64.1%·21일 개봉)에 이어 6.3%로 예매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상영관 대비 상당수 관객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은 왜 ‘옥자’ 상영을 거부하는 것일까. 앞서 말한 “유통질서 훼손의 큰 우려”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놓은 ‘2015년 한국영화 수익성 분석’에 작은 힌트가 있다. 이에 따르면 총 제작비 10억원 이상 규모이거나 전국 최대 100개 이상 상영관에서 개봉한 70편의 극장 매출의 전체 매출 중 비중이 2007년 이후 처음으로 70%로 떨어졌다. 영진위는 “IPTV와 온라인 VOD 매출 집계액이 크게 늘어난 것”을 요인으로 꼽았다. 영진위는 “그럼에도 한국 영화산업의 극장 매출 의존도는 다른 나라보다 과도하게 높다”고 밝혔다.

결국 국내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들의 반발은 고유의 영역을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다는 경계심의 표현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중장년층 증가 등으로 극장 관객수가 줄지 않지만 또 다른 플랫폼의 확장에 자칫 전통적인 영역이 침해당할 수 있을 거란 우려의 얘기다. 실제로 영진위 한 관계자는 “IPTV와 온라인 시장의 규모가 지난해 처음으로 4000억원을 넘어섰다. 관련 사업자도 늘고 있다”면서 대중 역시 “모바일 등을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에 익숙해졌다”며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옥자’를 공개하는 방식이 안착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는 뚜렷하지 않다. 넷플릭스가 가입자수와 각 콘텐츠 조회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가입자수는 아직 많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로 비춰볼 때도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관측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옥자’ 논란 자체만으로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보는 시각도 나온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이미 5월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옥자’가 논란을 모으면서 넷플릭스는 전 세계 영화시장에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알린 셈이 됐다”면서 “그 홍보의 부가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어쩌면 ‘옥자’와 관련한 논란은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더 뜨겁게 달궈진 건지도 모른다. 그가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으로 이미 국내외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전 평론가는 “넷플릭스가 그를 선택한 것 역시 그들 입장에선 탁월한 선택이다. 제작비를 투자해 그만한 효과와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한국 감독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콘텐츠 자체가 지닌 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창작자의 역량이 플랫폼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큰 핵심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드래곤 USB앨범 ‘권지용’ .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지드래곤 USB앨범 ‘권지용’ .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 음악이 들어있지 않은 USB ‘권지용’

USB에 음원 다운로드 사이트 링크
가온·한터, 음반 여부 해석 엇갈려
미래형 음반에 관한 새로운 화두로

지드래곤 USB앨범 ‘권지용’은 ‘음악이 들어 있지 않은 앨범’이라는 점에서 음반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을 불렀다. ‘권지용’에 앞서 김장훈 갓세븐 이승기 등 이미 USB앨범이 존재했지만, 모두 음원을 담았다. 반면 ‘권지용’은 링크를 통해 접속한 특정사이트에서 각종 음악콘텐츠를 다운로드 받는 방식을 취하면서 ‘음악 저장매체’에 대한 일반적 인식에 질문을 던졌다.

가온차트를 운영하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음콘협)는 ‘권지용’을 앨범 차트에 적용시킬 수 없는 디지털음반으로 규정했다. 한국저작권협회와 음반 집계사이트 한터차트는 앨범으로 간주하는 등 엇갈린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권지용’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음반의 정의’가 아니라, 지드래곤이 바라보는 ‘음반의 미래’다. ‘권지용’의 음악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는 사이트는 오직 지드래곤 USB를 통해야만 한다는 점, 또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만 내려받아 ‘권지용’을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지드래곤이 향후 새로운 콘텐츠를 해당 사이트에 업로드하고, 사용자는 이를 ‘권지용’에 추가할 수 있다.

결국 ‘권지용’은 생산자의 일방적 공급을 거부하고, 사용자가 선택적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USB는 콘텐츠를 담고 비우기 가장 편리한 매체다. 단순히 음악 저장매체로 USB를 선택했다는 점만으로는 그의 시도는 새롭지 않다.

음콘협도 “‘권지용’은 지금까지 선보였던 음악매체만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새로운 상품”이라며 “대한민국 대중음악시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의미 있고, 이를 통해 CD를 대체할 새롭고 효율적인 매체로서 USB가 각광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드래곤이 제시한 ‘미래형 음반’은 현 시장에서는 분명 기존의 룰을 깨려는 시도다. 새로운 시도는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모범답안이라 믿고 있던 기존 가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까닭이다. 지드래곤의 시도가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단자’로 여겨지겠지만, 지지를 얻고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룰을 만들어낸다면 ‘혁명’에 성공한 것이 된다.

mp3플레이어, PMP 등 소형 파일재생기와 디지털디스크(DD) 등 저장매체가 스마트폰에 밀려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2016 음악산업 백서’에 따르면 한국인 약 10명 중 7명은 CD나 DVD 같은 물리적 형태의 디스크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비율은 91%에 달했다. 스마트폰이 지드래곤 USB의 기능까지 흡수하게 되면 사장될 개연성도 있다.

지드래곤USB가 새로운 룰을 만들 것이냐, 이제 그 과정이 시작됐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