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입신고 하겠다면 방 못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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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노출 우려한 집주인 ‘갑질’… 세입자들 세액공제 신청 꺼려

대학 졸업 후 새로 살 집을 찾던 최모 씨(26·여)는 최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원룸을 발견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전입신고를 하려면 월세에 10%를 더 얹어 내라”는 조건을 뒤늦게 내걸었다. 이유를 묻자 “새로 세입자 받으면서 굳이 내가 세금을 더 내야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최 씨가 전입신고 후 월세 세액공제를 신청하면 집주인이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하니 월세를 더 달라는 것이다. 최 씨는 “당연한 권리(세액공제)를 왜 집주인에게 돈 주고 사야 하는지(추가 월세금) 모르겠다”고 했다.

1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사회 초년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원룸이나 도심 오피스텔 임대 시장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임차인을 구하는 전월세 매물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차인은 임대인 동의 없이도 세액공제를 신청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해당 주소지로 전입신고를 마쳐야 한다. 세원 노출을 꺼리는 집주인들은 애당초 전입신고 불가 조건으로 집을 내놓는다. 전입신고를 안 하면 정부가 사회 초년생에게 지원하는 전세자금 대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실제로 부동산 중개 전문 온라인 카페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에서 ‘전입신고’로 검색을 해보니 최 씨 사례처럼 ‘전입신고를 할 경우 월세 10%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거나 ‘전입신고가 안 된다’고 못 박은 매물이 많았다.

월세 세액공제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자 올해부터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도 월세 공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보완됐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3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직장인 남모 씨(29)는 “올해는 꼭 월세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집주인에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남 씨는 “계약 갱신을 거절당할까 봐 집주인 동의 없이 신청하기 꺼려진다”고 했다. 한 부동산 중개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집주인 동의 없이 세액공제를 받는다고 해도 결국 이를 집주인이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을’인 세입자 입장에서는 쉽사리 이를 신청할 수 없다”고 했다.

월세 공제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2009년 도입됐다. 연봉 7000만 원 이하이면서 전용면적 85m² 이하인 곳에 사는 사람은 1년 월세의 10%(최대 750만 원)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전국 월세 가구(452만8453가구) 중 세액공제 신청자는 4.5%(20만4873명)였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해에도 이 비중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전입신고를 안 하면 정부가 추진 중인 다주택자 과세 강화도 일정 부분 무력화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부터 주택 임대차 정보 시스템(RHMS)을 가동해 누가 몇 채의 주택을 갖고 얼마의 임대소득을 올리는지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집주인이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입자마저 전입신고나 세액공제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이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빈집 정보 시스템 등으로 사각지대를 파악하고 있지만 전수조사가 힘들어 세금 징수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전입신고#소득노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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