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에 5년간 15조원… 불황 타개보다 현금지원 위주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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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세법 개정안


정부가 10년 만에 대규모 감세 카드를 내놓은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 지원을 통해 소득 분배를 개선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면서 나타난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 붕괴 등의 부작용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서민중산층 대책에 드는 재원은 종합부동산세 인상과 주택임대소득세 확대 등 ‘상위 중산층’에 대한 세 부담 확대로 마련하기로 해 최상위 소득층에 국한됐던 ‘부자증세’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그대로 둔 채 세금 지원만으로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폭넓은 부자증세로 서민감세 재원 마련

정부가 저소득층 지원책의 핵심 수단으로 꼽는 근로장려금이나 자녀장려금은 세금을 지원금 형태로 돌려주는 ‘조세 지출’이다. 이런 복지성 조세 지출은 한 번 주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재정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먼저 일하는 저소득층을 돕는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은 올해 166만 가구(1조2000억 원)에서 내년부터 334만 가구(3조8000억 원)로 늘어난다. 저소득 가구의 자녀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자녀장려금은 자녀 1인당 20만 원 늘어나고 지급 대상도 확대해 111만 가구에 9000억 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올해 대비 근로장려금은 2조6000억 원, 자녀장려금 3000억 원이 늘어 내년 2조9400억 원, 향후 5년간 15조 원 가까이 증가한다.

각종 세액공제도 늘린다. 일용근로자 근로소득공제액은 기존 1일 10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늘린다. 의료비 세액공제에는 산후조리원 비용을 추가했고, 청년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 등 저소득층을 위한 비과세 항목도 늘렸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고용 부진과 소득 감소로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

반면 부족한 세수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걷어 메운다. 지난해 세제 개편에서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의 최고세율을 동시에 인상한 데 이어, 올해는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해 연간 9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34만9000명의 고가 1주택 또는 다주택 소유자, 토지 소유자들의 세 부담이 증가한다.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확대로 24만 명이 740억 원가량의 세금을 더 내게 된다.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의 이자·배당소득 비과세 혜택을 줄여 고소득층, 중산층으로부터 약 1700억 원의 세금을 더 걷는다.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한 법인세, 소득세 감면을 폐지해 연 1400억 원의 세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 청년실업 해소 못하는 ‘밑 빠진 독’ 우려

10년 만에 감세 세법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정부는 재정 여력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정부 계획보다 세금이 많이 걷히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수는 기업 실적 호조와 부동산 거래 증가 등으로 정부 전망치보다 14조3000억 원 더 걷혔다. 올해도 1∼5월 걷힌 총 국세 수입은 140조7000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조9000억 원(12%)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 경제성장률 3%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경기가 악화되고 있어 언제까지 세수가 받쳐 줄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내년 최대 5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슈퍼 예산안’을 검토하는 것도 재정건전성 우려를 더하고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특수도 내년에는 끝날 가능성이 높고, 전반적으로 세수 개편으로 인한 효과도 끝나 내년 재정 적자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조세지출이 소득분배 개선이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완화 등에 장기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원 대상을 보면 결국 20대 취업 대기자나 아르바이트생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보다는 복지 지출성 세제 개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수가 부족해지면 다시 고소득층, 중산층을 겨냥한 ‘부자증세’ 조치가 추가로 나올 수도 있다. 이미 정부는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갑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얼마만큼의 재정지출 요구가 있는지, 기존 세수 시스템으로 조달이 안 된다면 어느 계층, 어느 부분에서 조달할지 국민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김재영 redfoot@donga.com / 세종=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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