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자율차 등 개별과제 나열… 5개월전 보고내용 ‘재탕’ 수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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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혁신회의 전격 취소]부처별 규제혁신 보고서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이 2차 규제혁신 회의를 불과 3시간여 앞두고 연기한 것은 기존 정책을 재탕한 백화점식 대책의 한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대로는 국민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해 청와대가 정책라인을 개편하면서까지 강조한 혁신성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호만 무성했지 기업 환경을 옥죄는 규제가 그대로인 현실을 타개하려면 규제당국이 일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5개월 동안 손 놓은 규제혁신

올 1월 문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혁신 토론회’에서는 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38개 규제를 개혁하는 과제가 쏟아졌다. 자율주행차의 임시운행 절차 간소화, 로봇과의 협동작업을 허용하는 스마트 공장 도입, 드론 시험비행 규제 완화, 핀테크 활성화 등 지난 정부 때도 논의됐던 개별 과제가 빼곡히 보고서를 채웠다.

당시 문 대통령은 “과감한 방식,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이 새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때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27일 회의 안건은 △드론 및 자율주행차 육성안 △에너지 신산업 혁신 방안 △스마트공장 보급 및 확산 방안 등으로 1월 안건의 판박이다. 기존 정책을 확대하는 차원이라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애로를 호소하는 현장의 규제를 외면한 채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벤처, 중소기업 분야에 정책이 쏠려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핵심 규제 이슈인 인터넷 전문은행과 개인정보 규제 완화 방안은 초기 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전문은행에 투자한 기업은 의결권 지분을 4% 넘게 보유할 수 없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이 늘어나려면 지분 상한선을 높여야 하지만 일부 여당 의원과 시민단체는 대기업의 사금고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신산업에서 일자리를 늘릴 기회를 잃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개인정보 규제와 관련해 산업계에서는 익명 처리된 개인정보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빅데이터 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시민단체는 규제를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양쪽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지만 정부가 평행선만 달리도록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핵심 이슈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변죽만 울리는 회의를 해서는 혁신성장에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 “정부가 개혁 반대파 설득하라”

기업들이 꾸준히 요청해 온 수도권 규제 완화는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않았다. 수도권 규제는 구직자가 선호하는 수도권 일자리를 가로막는 덩어리 규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달 15일 의료산업에 대한 규제개혁과 5세대(5G) 이동통신 투자에 대한 지원 확대를 정부에 건의했다. 모두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가 큰 과제들이지만 규제혁신 회의 안건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모호한 정책 리스트만 만들지 말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어떤 산업에는 규제를 강화하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완화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 철폐의 효과가 전체 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도훈 경희대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는 “규제혁신에 반대하는 기득권층이나 시민단체를 설득해 양보를 이끌어 내야 한국 경제를 더 나은 길로 유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김준일 기자
#규제혁신회의#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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