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교수 “스튜어드십 코드, 민간에 강요하는 순간 정권의 기업지배 수단으로 전락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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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전문가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는 자율규범이다. 취지대로 자율적으로 운영된다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이를 기업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한 강제 도구로 쓸 가능성이 적지 않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미칠 파장을 놓고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제도 자체보다는 정부여당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상법 분야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사진)는 이 제도가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강제적인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미국도 올해 코드를 도입했지만 자율규범이나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대체로 변한 것이 없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은 도입하면 강제적인 분위기로 변할 가능성이 크고, 기업은 장기적인 발전보다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 이익과 이를 위한 배당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코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서 배당을 늘리는 데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엘리엇 같은 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용해 한국 기업을 공격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주주 이익 우선, 적극적인 기업 감시 등 코드에 담긴 내용을 빌미로 기업을 공격하고 이윤만 챙겨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코드는 이 펀드들의 소위 주주행동주의에 판을 깔아주고 한국 기업의 경영에 간섭할 여지를 더욱 넓히는 효과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6년 이래 10년간 미국 기업들도 약 4조1700억 달러(약 4624조5300억 원)를 행동주의 펀드에 약탈당했다는 연구가 있는데,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런 현상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스튜어드십의 태생 배경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꼬집었다. 이 코드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08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여론은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지목했다. 최 교수는 “당시 영국 금융기관에 비난이 집중되자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 면피용으로 이를 도입했고, 내용이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해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입이 불가피하다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민간 자산운용사에 펀드를 나눠줄 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나 준수 여부를 놓고 점수를 매기거나 평가에 넣어서는 절대 안 된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민간에 강요하는 순간 이는 자율규범이 아니라 강제규범으로 변질되고 정권의 기업 지배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스튜어드십 코드#최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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