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개성있는 힙스터 잡으려면 기업도 힙해져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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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의 특성과 공략비법

언제부터인가 ‘힙스터(Hipster)’라는 집단이 한국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이들은 보통 ‘반주류적’인 문화지향성과 취향을 지니고 있다. 또 ‘기업’, ‘비즈니스’와 엮이는 것 자체를 ‘힙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에 기업의 마케터들이 접근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힙스터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을 추종하는 ‘현실주의자 힙스터’ 혹은 ‘애프터 힙스터’ 등이 그들의 취향을 따라 소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집단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43호(2018년 2월 15일자) 스페셜리포트에서는 규정하기조차 쉽지 않은 하위문화 집단인 힙스터의 특성과 취향, 행동패턴을 분석했다. 그 핵심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 힙스터는 누구인가?

문화마케터 황인선 작가에 따르면, 힙스터란 영어로 ‘무엇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이라는 의미의 ‘힙(hip)’에서 파생된 단어다. 1940년대 당시 세계대전과 미국 내 인종 갈등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불확실성과 저항의식이 팽배했다. 여기에 더해 전쟁 이후 교육기회가 확대되면서 기성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비판의식이 강화됐다. 어두운 테의 안경, 베레모, 핀 스트라이프 정장은 당시 힙스터들이 받아들인 흑인 패션의 특징이다. 이후 백인 로큰롤 문화와 1970년대 히피 등에 의해 대체됐다가 1990년대부터 특정 청년문화를 일컫는 명칭으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대의 힙스터는 주류 문화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1940년대 힙스터와 유사하지만 공동체 형성보다는 패션과 외양에 크게 집중하면서 엘리트주의적인 생활방식을 택한다는 특징이 있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는 “처음에 힙스터는 흑인 재즈 뮤지션을 추종하는 백인 중산층의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며 “이들은 주류에 대한 분노, 저항의식과 동시에 패배의식 등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이들은 소비생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집단”이라며 “스타벅스 대신 좋은 농장에서 수확한 커피를 마시고, LP판을 사며, 특정한 브랜드의 토스터를 쓰고, 변속 기어가 없는 단순한 자전거를 타는 등의 행동을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행동 전문가인 여준상 동국대 경영대 교수는 “힙스터 행동을 추적하면 공통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며 “남들과 다름, 자신만의 것, 평범의 거부, 반유행, 비주류 등이다”라고 설명한다.

○ 힙스터 행동과 힙스터 사이클

여준상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힙스터 행동에는 세 가지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다. 첫 번째는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성(independent)’이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심리다. 타인이 나와 나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지속적 변화를 추구하는 ‘촉진성(promotive)’이다. 기득·기성의 안정을 지키기보다는 지속적 변화를 추구하는 심리다.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규범이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탈규제·탈권위·탈체제적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힙스터 행동의 세 가지 심리적 메커니즘 중 마지막은 직접 행동에 나서는 ‘운동성(locomotive)’이다. 이는 생각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특성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치고 나가는 기관차를 떠올리면 된다. 무의미한 생각의 반복보다는 행동에 더 방점을 찍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세 가지 심리적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하나의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탈출 욕구-힙스터 행동-범용화-(재)탈출 욕구’로 이어지는 이른바 ‘힙스터 사이클’이다. 풀어서 설명해보면, 먼저 힙스터들은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 욕구’를 갖는다. 이러한 탈출 욕구는 천편일률적 틀이나 반복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전에 없던 특별한 행동, 즉 ‘힙스터 행동’으로 이어진다. ‘굿즈’와 상징물의 수집이나 문신 같은 행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힙스터 행동은 그러나 어느 순간 ‘범용과 일상화’의 단계로 들어간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 힙스터 행동은 ‘탈출적 의미’가 퇴색된다. 이런 경우 힙스터들은 일상화된 힙스터 행동을 벗어나고 싶은 ‘재탈출 욕구’에 의해 다시 탈출을 감행한다. 탈출 이후 힙스터들은 주류 대중이 하지 않는 또 다른 행동에 나선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반복적인 힙스터 사이클이 형성된다.

○ 기업의 힙스터 공략법

한국 기업들이 힙스터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힙스터의 독특한 특징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김서윤 연구가는 “한국의 힙스터는 현실과 타협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경우 힙스터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은 미국 뉴욕 등지의 힙스터에 비해 약한 편이고 다수는 ‘진성 힙스터’라기보다 평범한 시민들이 ‘힙함’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 힙스터’에 가깝다는 것. 이 현실주의자 힙스터가 결국 비즈니스를 푸는 열쇠가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TV를 보지 않고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힙스터, 음반을 사지는 않지만 음악 페스티벌에는 참여하는 힙스터 등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소비 행태를 분석하면 향후 주류 문화로 부상할 수 있는 영역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소수의 진성 힙스터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황인선 작가는 “진성 힙스터를 기업의 마케팅, 디자인 자문으로 두고 협업을 진행하면 획일적 조직 문화에 자극을 부여할 수 있다”며 “TV광고에 힙스터 이미지를 차용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이 좋아하는 ‘힙한 스타일’의 벼룩시장과 팝업 스토어, 구제 시장 등을 적극 활용하고 힙스터와 함께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의 활동을 하면 멀어 보이는 힙스터와 마케팅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뜻이다.

여준상 교수는 “기업은 힙스터를 쫓아가는 추종 전략을 펼쳐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힙스터가 돼야 하고 힙스터 마인드를 가지고 끊임없이 역발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역발상은 일상, 평범, 기성, 평균, 획일, 유행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며 “힙스터 성향을 가진 사람을 기업 내외부의 ‘역발상 촉진자’로 육성하는 것은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훌륭한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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