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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크레인… 거리 곳곳 “살려달라”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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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크레인… 거리 곳곳 “살려달라” 플래카드

이건혁기자 , 김준일기자 , 최혜령기자 입력 2018-02-06 03:00수정 2018-02-0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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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조선업 대책 발표 앞둔 통영-창원-군산 조선소 현장
지방선거 앞둔 정부, 금융-정치 논리 사이 ‘딜레마’
본보 취재팀이 1월 31일 찾은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 조선소 정문 인근은 인적이 뜸한 채 지역주민이 내다 건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었다. 조선 기자재를 옮기는 차량들로 북적였던 호황기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위쪽 사진).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현장도 건조할 배가 없어 정비 작업만 이루어지고 있다. 두 회사의 운명은 이달 나올 외부 컨설팅 보고서와 정부의 조선산업 대책에 달려 있다. 통영·창원=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정부는 2016년 6월과 10월 두 차례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조선업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없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구조조정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부실을 도려내지도 못하고 살릴 기업을 지원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위기의 조선업체가 몰려 있는 지방은 지쳐가고 한국 경제는 부실이 누적되면서 곪아간다. 정부는 부실이 누적된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의 운명을 결정할 조선업 대책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중대형 조선소가 들어서 있는 경남 통영과 창원, 전북 군산을 찾아 폭풍전야의 현장을 취재했다.

“1년 3개월 넘게 희망 고문을 당했습니다. 확실한 대책 없이 곧 좋아질 거라는 말만 믿고 버텨왔는데 정말 한계입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조선소 근처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 온 성혜인 씨(49·여)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조선소 협력사에서 일하던 성 씨의 남편은 일감이 떨어지자 1년째 경기 및 충청 일대 공사장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 1만 명 넘던 직원 240명으로 쪼그라들어


지난달 31일 찾은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 조선소. 지난해 11월 건조를 마친 선박이 선주에게 인도된 조선소는 새로운 일감이 없어 텅 비어 있었다. 일감이 떨어지자 한때 1만 명이 넘던 근로자가 땀을 흘렸던 현장에는 자재를 정리하거나 현장을 보수하는 등 관리 업무 담당자 240명 정도만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협력업체 직원 약 6600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성동조선 소속 정직원 1248명 중 1000명은 휴직에 들어갔다.

수십 t에 이르는 선박용 철판을 쉼 없이 끌어올렸던 노란 골리앗 크레인들은 멈춰 선 채 움직일 줄 몰랐다. 배운용 성동조선 차장은 “조선소 크레인이 상단에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 건 정말 드문 장면”이라고 했다.

조선소 한쪽에는 근로자들이 용접이나 도장을 할 때 쓰는 이동식 작업대(고소작업대) 100여 대도 정렬된 채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근무가 시작되는 오전 8시가 넘었지만 텅 빈 조선소 야드에는 근로자 한 명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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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조선 인근 상점가 곳곳에는 ‘임대’ ‘영업 중단’ ‘휴업’과 같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편의점 한 곳은 전기요금이 아까워 불까지 꺼 놨다. 조선소 직원들이 몰려 살던 신시가지 인근도 마찬가지였다. 공인중개사 김모 씨(37·여)는 “일대 상가 100곳 중 99곳이 매물로 나와 있다”고 전했다.

○ “정치 논리에 구조조정 휘둘려서는 안 돼”

같은 날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조선소와 인근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3년 협력사 직원까지 약 8000명의 일터였던 STX조선에는 지난달 말 기준 2071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협력사인 원엔지니어링 신상병 대표는 “근무 인원도 절반 가까이 줄었고 작업과 특근도 줄면서 직원들의 봉급도 크게 깎였다”고 했다.

STX조선과 성동조선은 기회를 주면 회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성동조선 측은 “육상에서 배를 건조하는 공법으로 각종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연구개발(R&D) 투자가 진행 중이라 중대형 선박 시장에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STX조선해양도 “다수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중소형 선박 건조에는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특히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선박 발주가 늘어나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라크슨리서치’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올해 2780만 CGT(표준화물 환산 톤수)에서 2020년 3470만 CGT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황 개선을 기대하며 제대로 된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수년 전부터 업황이 개선되면 좋아질 것이란 말을 반복하며 구조조정이 미뤄진 결과 오히려 조선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실업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구조조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기업을 살리려다 좀비기업으로 연명하는 형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경남 통영과 창원 지역 주민들과 관련 조선업체 임직원들은 ‘금융 논리만이 아니라 산업과 지역 반응을 종합적으로 보겠다’는 정부의 태도에 기대를 걸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에 불리하게 작용할 구조조정을 하겠느냐는 정치적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정부는 민간 컨설팅업체의 실사 보고서와 그동안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가칭)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늦어도 설날 전에 (컨설팅)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대규모 실직 사태를 야기할 조선소 청산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는 것은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지난해 6월 전북 군산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자 지역 민심이 크게 악화된 사례도 있다. 군산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했다는 A 씨는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조선소 살려준다고 해 아직 군산을 못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원룸 임대사업자 B 씨는 “저번 대선에서 군산 살려준다던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선업은 지금이라도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선업 종사자들이 이직할 수 있는 방안까지 섬세하게 계획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영·창원=이건혁 gun@donga.com / 군산=김준일 / 최혜령 기자


#조선업#조선소#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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