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복지 차원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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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원금 전액 탕감 왜

정부가 29일 내놓은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대책은 ‘금융 논리’보다는 ‘복지 혜택’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장기 소액 연체자를 단순히 ‘빚을 못 갚은 채무자’가 아닌 경제 취약계층으로 보고 이들을 구제해 건전한 시민으로 만들겠다는 정부 의지가 담겼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자력으로 도저히 재기할 수 없는 취약한 계층의 장기 소액 연체자만 선별했다. 경제 활동으로 신속한 복귀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도 빚 탕감 정책 혜택을 보는 159만 명에 대해 “1000만 원 이하 소액을 10년 넘게 상환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부러 빚을 안 갚은 게 아니라 도저히 여력이 안 돼 못 갚은 것”이라며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번 대책은 문재인 대통령 주요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이런 ‘경제적 사면’ 정책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채권자인 은행들의 주도로 국민행복기금이 설립된 바 있다. 일부 서민 채무자의 이자를 면제하고 원금을 최대 90% 깎아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채무 재조정이 아닌 원금을 전액 탕감해 주기로 하는 등 지원 수준을 크게 높였다.

정부는 장기 소액 연체자들의 채무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누구도 혼자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는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마찬가지로 누구도 혼자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 만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혹독한 추심에도 소액을 10년 넘게 연체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상환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다는 점도 반영했다. 어차피 능력이 부족해 빚을 갚을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 대해 ‘빚의 굴레’를 벗겨줘 경제 활동을 다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보탬이 된다는 의미다.

은행 등 금융사가 애초 상환 능력 심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점도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명순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채권이 부실화되고 연체 기간이 길어졌다는 것은 당초 상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금융회사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셈이어서 금융 분야에서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 갚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정부가 갚아 줄 것이라는 잘못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1000만 원이 조금 넘는 빚을 오래 갚지 못했거나 1000만 원 이하를 9년 동안 갚지 못한 채무자가 역차별을 받을 여지도 있다.

윤창현 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는 “10년을 앞둔 사람들이나 국민행복기금으로 일부만 탕감된 사람들이 형평성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크다. 해외는 민간 금융사가 일부를 탕감해 주는 식으로 한다”고 말했다.

연체자 빚을 갚아 주기 위한 재원 마련에도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위는 비영리 재단법인을 설립해 국민행복기금이 사들이지 않은 76만2000명의 장기·소액채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재단법인은 시민·사회단체의 기부금과 금융사 출연금 등으로 만들어진다.

금융권은 ‘팔 비틀기’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연체자의 빚을 은행이 대신 갚으라는 뜻이다. 복지 차원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라면 정부 예산을 들여 제대로 된 정책으로 추진하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대책#정부#복지#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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