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부회장 “기업들 힘든 지경”… 靑 “민간 압박으로 왜곡”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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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관련 경총 직접경고 전말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대해 공개 비판에 나선 것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재계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일자리 대책에 대한 재계의 반발 기류를 그대로 두면 국정 동력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는 등 일자리 대책에 가속도를 붙이려는 시점에 경총이 반대 의사를 밝힌 것에 주목하고 있다. 재계가 새 정부 일자리 대책에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특히 청와대가 문제 삼는 부분은 김영배 경총 부회장의 발언 중 “새 정부가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추진 정책을 발표한 이후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라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12일 취임 후 첫 현장방문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뒤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제로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는 ‘비정규직 제로화’가 공공부문에 대한 약속이었음에도 김 부회장이 이를 민간기업에 대한 압박으로 왜곡해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문 대통령은 김 부회장의 발언에 대해 보고를 받은 뒤 “토론은 얼마든지 좋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분명하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기업에 정규직 전환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런 오해를 그대로 두면 “청와대가 직접 재벌을 압박한다”는 인식이 확산돼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초기부터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총은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된 구조를 지적한 원론적인 발언”이라며 청와대가 오히려 오해를 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전날 김 부회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민간부문까지 확산될 경우 기업 경쟁력과 일자리 창출 여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부정적 인식을 분명히 밝혔다.

재계에선 실제 일자리 정책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한 대기업 임원은 “파견을 받은 하청업체 직원까지 비정규직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민간도 공공부문처럼 비정규직을 제로화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공 일자리 확대 정책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적지 않다. 이날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81만 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공약에 대해 “다른 재정 문제가 없는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국가 재정에서 걱정되는 것이 포퓰리즘과 국가 채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청와대가 재계를 향해 비판에 나선 것을 두고 앞으로 이어질 경제개혁 정책을 위한 주도권 확보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청와대에서는 이를 계기로 기업과의 협력채널을 통한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국가일자리위원회 자문위원회에 정부와 노동계, 기업단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만큼 노사민정의 협의채널로 비정규직 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마음 열고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이은택 기자

※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 25일 발언 요지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상당히 힘든 지경이다. 그런데 이들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협력업체 정규직이다. 현재의 논란은 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문제다.

◇회사의 특성이나 근로자 개별 사정은 고려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식은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다. 노동시장의 심각한 경직성도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주된 원인이다. 대기업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 인상이 지속되면 임금 격차는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간접고용 문제는 대기업 노사의 고통분담을 바탕으로 한 배려를 통해서만 해결 가능할 것이다.
#경총#문재인 대통령#비정규직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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