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엘리엇’ 먹잇감 노리는데… 국회는 경영권 방패 뺏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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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잊혀진 적대적 M&A 방어책

지난해 7월 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 어렵게 합병했다. 임시 주주총회 한 달여 전 예기치 못했던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깜짝 등장으로 합병 자체가 무산되고 경영권까지 뺏길 뻔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작전으로 소액주주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합병하는 데 성공했다. 그 직후 재계 및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2의 엘리엇 사태’를 막기 위해 해외 투기자본들에 대한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만 1년이 지난 현재 당시 거론됐던 방어책은 어느새 잊혀져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20대 국회에 발의된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수는 꼴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2003년 소버린, 2006년 칼 아이컨, 2015년 엘리엇을 차례로 겪고도 바뀐 게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 1년 새 잊혀진 포이즌필

20일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0.72%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10년간 국내 상장사의 외국인 지분 평균은 27% 수준. 삼성전자처럼 투자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는 평균 35% 선을 오르내린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성장을 위해 외국인 지분이 늘어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단순 투자가 아니라 경영 참여로 목적을 바꾸는 순간 경영권을 위협받는 기업도 적지 않은 만큼 최소한의 방어 장치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은 차등의결권 등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도 2005년 6월 일본식 포이즌필(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발생하는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지난해 엘리엇 사태를 계기로 도입이 거론됐던 기업 경영권 보호장치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이다. 이 가운데 아직까지 실제 법으로 적용된 건 없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포이즌필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고 새 국회에서는 아직까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지난해에도 삼성 정도 되니까 방어가 가능했지 그보다 취약한 기업이었으면 경영권이 넘어갔을 것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지금도 그때와 전혀 다름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제2의 엘리엇 사태가 또 생긴다면 실제로 경영권 찬탈 위험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소 잃고 외양간 더 부수기

20대 국회 개원 후 외국계 투기자본에 악용되기 쉬운 경제민주화 법안들만 쏟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내놓은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등이 담긴 상법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외국계 펀드가 지주회사 지분 1.5%만 갖고 있어도 자회사나 손자회사의 경영진에 대해 악의적 소송을 제기하고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어 제2의 엘리엇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 등이 발의한 상법개정안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자사주와 대기업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해 우호지분 활용 가능성을 낮춘다. 예를 들어 지난해 엘리엇 사태 당시 KCC가 삼성물산 자사주를 전량 매입해 ‘백기사’를 한 것이 삼성의 경영권 방어에 결정적 도움이 됐지만 자사주 활용이 제한되면 위급할 때 이런 대응도 불가능해진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영진들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법으로 방어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 오히려 에너지가 분산된다”며 “글로벌 M&A가 많아지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창과 방패를 종합적인 시각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도 “기업이 건전하게 투자하고 고용하고, 재투자해야 경제가 선순환한다”며 “법적, 제도적 지원 없이는 기업들도 경영권 방어 논리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이샘물 기자
강해령 인턴기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년
#엘리엇#포이즌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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