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현대車의 라이벌은… 구글-삼성전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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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산업 간 경계 파괴시대의 생존전략

애플과 구글이 자동차를 만드는가 하면 알리바바가 모바일 결제에 이어 TV 산업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전혀 다른 산업에 속한 제품과 서비스가 결합하는 일이 부쩍 늘면서 이처럼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후 2012년까지 미국 가정의 통신비는 11% 증가한 반면 자동차 분야의 지출이 줄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통신 분야의 혁신으로 자동차로 직접 이동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자 사람들이 자동차 분야의 지출을 줄였다는 분석이다. 기존 업종 중심의 사고에 갇혀 자동차 시장만 분석해서는 이런 현상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현대자동차의 가장 큰 경쟁자가 누군가”라고 묻는다면 1990년엔 대우차, 2010년엔 도요타나 GM이었을 정답이 2030년엔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일 수도, 삼천리자전거일 수도, 또 애플이나 구글, 삼성전자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179호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이 같은 경계 파괴 트렌드를 진단하고 업종을 넘어 새로운 성장을 꾀하는 방법을 집중 소개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경계 파괴, 당신도 희생자 될 수 있다

경계 파괴 현상은 IT의 발전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IT와 직접 관련이 있는 업종만 영향권에 놓인 것은 아니다. IT와 관련이 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업종에서도 변화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김지현 SK플래닛 커머스전략실장은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 업체인 ‘배달의 민족’ ‘요기요’ ‘배달통’ 등의 등장으로 전단지나 상가 수첩 제작 업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전단 제작 회사 사장들은 스마트폰이 네이버나 삼성전자 같은 IT 기업들의 생존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자신들의 사업에 영향을 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IT 기술의 발달은 에버랜드나 CGV 같은 오프라인 오락, 문화 사업까지 넘보며 경계 파괴 현상을 재촉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지난해 인수한 가상현실 기기 제조업체 오큘러스의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헬멧 형태로 된 디스플레이 장치)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선보인 증강현실 장치 ‘홀로렌즈’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현실인 놀이공원이나 영화관 대신 가상의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유도할 수 있다.

조용호 비전아레나 대표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이전처럼 분명치 않게 된 것도 경계 붕괴의 한 사례”라며 “소비자가 기업의 생산 과정에 깊이 참여하고 기업은 ‘거래’가 아닌 ‘관계’를 맺기 위해 고객과 소통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한 플랫폼 경제의 발달로 작은 기업들이 특정 분야에서 엄청난 성과를 내면서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다양한 사업 분야가 서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업종 내에서 경쟁 우위를 가졌다고 생존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며 “업종을 뛰어넘어 넓은 시야로 시장을 바라보면서 새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이론들이 학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 “고객 중심 사고로 중무장해야”


산업 간 경계 붕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각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조 대표는 “핵심 고객이 누구인지 규명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등 고객 중심 사고로 중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을 거래가 아닌 관계 측면에서 보기 위해 가장 쉽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이 고객 참여형 커뮤니티 구성이다. 고객 커뮤니티는 불만 사항을 올리고 콜센터가 응대하는 소극적 의미의 고객 관리와 달리 고객을 팬으로 만들고 고객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레노버가 전시회 행사에서 맨 앞줄에 ‘팬’이라 부르는 고객들을 앉혀 배려한 것도 고객 커뮤니티 전략의 대표적 사례다.

또 제품의 용도를 기존 틀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최종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특정 제품을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면 ‘열차’라는 교통 서비스는 고객이 ‘추억에 남을 좋은 여행’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고객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지, 또 고객이 우리 제품을 사용하기 전후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고민하다 보면 혁신적인 신제품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특히 요즘 기업은 다른 산업 분야에 속하는 보완재를 직접 만드는 사례가 많다. 예컨대 전기차 생산 기업인 테슬라는 자사 전기차를 구매한 고객들에게 무료 전기 충전 서비스를 제공한다.

IT와 제조가 융합하는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체들이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그간 한국의 제조업이 세계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일본 제조업을 빠르게 추격하며 더 성능 좋은 제품을 값싸게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품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서비스가 중시되는 시대에는 성능이나 가격보다 서비스의 편의성과 확장성이 더 중요하다. 김지현 실장은 “제조업체들도 어떤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서비스 사용료나 광고, 중개 수수료 등 다양한 수익 모델 도입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벤처기업 ‘위딩스’가 만드는 체중계는 사업 모델을 서비스 분야로 확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무선 인터넷 센서가 부착된 이 체중계에 올라서면 체중, 근육량 등의 정보가 PC나 스마트폰으로 전송되고 이를 주치의 등과 공유할 수 있다. 과거엔 체중계를 잘 만들어 팔기만 하면 끝났지만, 새로운 사업 모델에서는 구매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판매 이후에 오히려 더 확대되고 발전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계획해 탄생한 ‘완생’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미생’인 상태로 출발해 사용자들의 의견을 들어 가며 진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기존 제조업에서 익힌 성공 공식을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경계 파괴 시대에 기업들은 과거보다 유연한 정체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애플이 PC 제조업체란 정체성을 버리고 혁신 선도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새로운 정체성을 소비자에게 심어 줘야 한다. 김영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기존 정체성과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새 기회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개발해 새로운 정체성을 각인시켜야 한다”며 “다른 기업과의 제휴 및 협력, 인터넷을 활용한 활발한 소통 등을 통해 스토리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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