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해고 기준 가이드라인’ 싸고 勞-政 시각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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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구조개혁 첫 타깃은 ‘금융’]
政 “해고요건 완화 아닌 구체화”… 勞 “부당해고 수단 악용될 위험”

현재 고용노동부가 발주한 해고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인 노동법이론실무학회 연구팀은 저성과 근로자들에 대한 일반해고 사례와 판례가 축적된 독일과 일본의 경우는 물론이고 국내 대법원 판례까지 정밀히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 관계자는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업무능력 개선 가능성이 없는 근로자에게까지 평생 고임금을 지급하지는 않는다”며 “국내 법원이나 노동위원회 역시 (저성과 근로자 해고와 관련된) 판례나 해법을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안을 만들어 생산성 향상과 고용 안정을 연계해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제시할 가이드라인이 해고 요건을 완화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해고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투명화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해고 요건 완화’가 아니라 ‘해고 요건의 투명화’라고 설명한다. 불분명한 일반해고 요건을 구체화해야 이를 둘러싼 분쟁이나 소송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도 법원이나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해고와 전환배치 등을 둘러싼 소송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며 “일반해고 요건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이런 갈등비용을 줄이고, 노동계가 염려하는 부당해고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말장난을 하고 있다”며 “성과와 업적을 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해고 요건만 구체화한다면 부당해고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반박했다. 국회 반대 역시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있고, 오히려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을 상당수 발의해놓은 상태다. 만약 계류돼 있는 법안들이 통과되면 기형적인 모습의 해고제도가 만들어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영순 새누리당 의원은 “노동 현장은 이미 통상임금, 정년 연장, 임금체계 개편,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상당한 혼란에 빠져 있다”며 “해고와 같은 중요한 고용안정장치에 대해 정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사업장에 신호를 보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노동계가 염려하는 부당해고 남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절차와 요건을 엄격히 하면 오히려 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당해고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동계가 염려하는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노사정 합의를 통해 마련하면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노동계의 이 같은 갈등을 저성과 근로자에 대한 평가 및 고용, 해고 기준에 관한 논쟁으로 분석한다. 관련 기준 자체가 불분명한 만큼 ‘기준 투명화’와 ‘요건 완화’ 중 어디에 무게를 두고 보느냐에 따라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고, 타협안이 도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공감하는 해고 기준을 만들 수 있느냐, 또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관한 논쟁이 앞으로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고’는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해고 문제부터 꺼내면 노사정 논의가 깨질 가능성이 크다”며 “(일반해고 기준을 마련하더라도) 보복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을 절차를 마련하고, 성과 개선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해고제도#일반해고 기준#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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