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치매 보장한다더니… MRI 요구하는 보험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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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치매보험 ‘모호한 약관’ 혼란
‘치매 초기 간병비-진단비 지급’ 인기… 출시 3개월만에 80만건 팔려

민기숙 씨(65)는 최근 가벼운 치매도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에 들었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어 초기 단계부터 치매를 관리하고 싶었다. 가입 후 다시 약관을 보니 보험금을 타려면 의사의 진단뿐만 아니라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 자료가 있어야 했다. 경미한 치매는 CT 등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민 씨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지 애매한 보험을 계속 유지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국내 보험사들이 지난해 말부터 중증 치매뿐만 아니라 경증 치매도 보장하는 보험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치매 초기 수천만 원의 간병비와 진단비를 준다는 말을 듣고 가입이 크게 늘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경증 치매 보험 상품은 지난해 12월 출시 이후 3개월 만에 약 80만 건이 팔렸다. 지난해 국내 치매 환자 수(75만 명)를 넘어서는 규모다.

○ 뒤늦게 논란되는 치매보험금 지급 기준

최근 보험금 지급 기준이 보험사마다 다른 것으로 나타나 혼선이 커지고 있다. 상당수 보험사는 뇌영상에 이상 증세가 나와야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소비자들은 “경미한 치매의 경우 뇌영상에 이상 증세가 나오긴 어렵다”며 정작 치매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이런 우려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모든 보험사는 약관상의 치매 진단을 “전문의의 검사와 뇌 CT·MRI를 기초로 판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보험사마다 이 약관 해석이 다르다는 점. 금감원이 실태를 파악한 결과 삼성생명 등 일부 생보사와 대부분의 손보사는 뇌영상 결과에 이상 증세가 있어야만 보험금을 지급한다. 일부 보험사만이 뇌영상이 기초 자료일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의사의 진단만으로도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다고 보는 보험사는 많지 않은 셈이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치매 진단은 의사의 문진이 기본이며 뇌영상은 참고자료로 사용될 뿐”이라고 했다.

금감원은 이런 이유로 보험금 지급 기준에서 뇌영상 자료를 필수가 아닌 참고로만 활용하도록 보험사와 약관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뇌영상에서 이상 증세가 나와야만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보험사에 대해선 보험료가 이런 지급 기준에 맞게 적절하게 산정됐는지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증 치매는 뇌영상을 통해 판별하기 힘든 만큼 보험금 청구 빈도도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치매보험 상품 대비 보험료가 더 저렴해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가 약관을 개정하면 기존 가입자도 소급 적용할 수 있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는 약관 개정을 준비하면서도 뇌영상 자료를 지급 기준에서 완전히 제외하면 보험 사기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뇌영상 자료는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했다.

○ “보장기간 90세 전후로 정해 두는 게 유리”

일각에서는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금감원이 경증 치매보험 약관에 대한 심사를 엄격히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완전히 새로운 보험이 나올 때만 적절히 설계됐는지 확인한다”며 “경증 치매보험의 경우 기존 치매보험에 경증을 보장하는 특약 형태로 나왔기 때문에 이런 확인 의무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금감원은 치매보험과 관련해 분쟁 소지가 있는 만큼 사전에 지급 기준 등을 꼼꼼히 챙기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치매 진단 이후 90일간 치매 상태가 계속돼 호전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어야 한다. 환자 본인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보험금을 대신 청구할 대리인을 지정할 필요도 있다.

특히 보장 범위는 85세 이후까지 넉넉하게 설정해놓는 것이 좋다. 중앙치매센터가 2017년 말을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 전체 치매 환자 중 85세 이상에서 처음 치매가 발병할 확률이 40.3%로 가장 많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료가 다소 오르더라도 보장 기간을 90세 전후로 설정해놓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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