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블루오션 신탁시장 잡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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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이자 새 수익원으로 떠올라
인력확대-조직개편등 경쟁 치열… 국민-신한銀 약진으로 지각변동
유언대용서 후견신탁까지
고령화-치매환자 증가 등 영향… 자산관리 수요 늘면서 급성장


김모 씨(65·여)는 최근 신문 기사를 보고 집에서 가까운 한 시중은행 지점을 찾았다.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유언장을 남기지 않아도 가입자가 미리 정한 대로 은행이 사후에 재산관리를 해주는 상품이다. 생전에도 은행이 가입자의 자산을 알아서 굴려준다. 김 씨는 “유언장을 남기려면 증인도 필요하고 복잡해서 엄두가 안 났다. 공신력 있는 은행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니 좋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신탁(信託)’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주요 은행이 잇달아 신탁 관련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유언신탁, 후견신탁, 펫신탁 같은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신탁은 ‘믿고 맡긴다’는 뜻으로, 고객이 은행에 돈이나 부동산 등을 맡기면 해당 은행이 알아서 이를 운용하거나 관리해주는 방식이다.

은행들이 비(非)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고 있는 데다 고령화 시대 고객들의 자산관리 수요가 커지면서 신탁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 치열해진 신탁 경쟁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최근 신탁연금그룹을 신탁본부, 투자자산수탁부, 퇴직연금사업부로 세분했다. 또 신탁사업의 총책임자를 본부장에서 부행장으로 격상했다.

KEB하나은행은 올 들어 신탁본부를 신탁사업단으로 격상하고 관련 인력을 지난해의 두 배 가까이로 늘렸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신탁 관련 조직을 신탁그룹으로 확대했다.

시중은행들의 신탁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권 신탁 자산 순위도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국민은행은 지난달 말 현재 신탁 자산 규모가 62조 원으로 불면서 1위로 올라섰다. 올해 들어서만 15조 원 이상이 급증했다. 신한은행이 61조1000억 원으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하나은행은 58조8000억 원으로 3위로 밀려났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말 43조3000억 원에서 50조4000억 원으로 증가하며 상위권을 추격 중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옛 서울은행 시절 공익신탁 업무를 맡았던 하나은행이 ‘전통 강자’였는데 최근 은행들이 고령화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신탁 영업에 나서면서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며 “향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신탁 수수료도 더 낮아질듯

신탁은 금융사가 고객이 맡긴 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대표적인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꼽힌다. 은행은 고객이 맡긴 금액의 연 0.1∼1%가량을 수수료로 챙긴다.

그동안 퇴직연금신탁, 주가지수연계신탁(ELT) 등이 신탁시장을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주인이 사망했을 때 새 주인에게 양육자금을 주는 ‘펫신탁’부터 사고로 부모가 사망하면 미성년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은행이 보험금, 유산 등을 관리해주는 상품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탁 관련 수요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다양한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관련 수익도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신탁 경쟁이 치열해지면 혜택은 고객들에게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이 넓어지고 경쟁에 따른 수수료 인하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신탁업이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도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치매환자가 늘고 있어 미성년 후견, 자녀가 없는 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신탁 상품이 다양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신탁#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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