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모든 걸 바꿔… 회춘한 그랜저와 구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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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김현수 산업1부 차장
브랜드 회춘(回春)은 나이 든 브랜드를 젊고 ‘쿨하게’ 만든다는 용어다. 브랜드 전략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미션 임파서블’로 통한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는 “차라리 새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론칭하는 게 낫다.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 생각을 바꾸는 일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그 어려운 걸 해낸 브랜드가 있다. 실적도 승승장구다. ‘아빠 차’에서 ‘오빠 차’가 된 그랜저, ‘엄마 가방’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하게 된 구치가 대표적이다.

그랜저IG는 지난해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린 차다. 30대 신규고객이 대거 유입돼 판매량 13만대를 돌파했다. 그랜저 사상 최대 기록이다. 작년 구치 실적도 눈부셨다. 국내 백화점 매출 증가율이 40∼50%에 달한다. 글로벌 3분기(7∼9월) 매출도 49% 급증했다.


화려한 부활에 이르기까지 두 브랜드의 고민은 깊었다. 둘 다 전통 있는 유명 브랜드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핵심 고객도 함께 나이 들었다.

현대자동차 그랜저는 1986년 처음 나왔다. 중후한 이미지를 자랑하는 ‘사장님 차’의 대명사였다. 2000년대 쏟아져 들어온 수입차가 프리미엄 시장을 침범했다. 현대차 내에서도 ‘에쿠스’ 같은 고급 차가 나오면서 포지셔닝이 애매해졌다. 2011년 5세대 그랜저HG에 이르기까지 젊어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삼촌 차’ 정도로까지의 진화에 불과했다.

구치 역사는 좀 더 복잡하다. 192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탄생해 로고 캔버스 가방 같은 히트상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1980년대 창업일가의 경영권 다툼과 횡령으로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했다. 1990년 천재 디자이너 톰 포드의 등장으로 다시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가 떠난 뒤 또 주춤했다. 2014년 쯤 구치는 내리막길에 있었다.

그럼에도 핫한 브랜드로 부활한 배경은 뭘까. 답은 혁명에 가까운 혁신에 있었다. 2016년 11월 첫선을 보인 그랜저IG는 직전 모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전략을 모조리 바꿨다. 광고 슬로건이 ‘다시 처음부터 그랜저를 바꾸다’였다. 구치는 좀더 급진적이었다. 2014년 말 최고경영자(CEO)와 수석 디자이너가 동시에 교체됐다. 제품부터 매장 디자인까지 충격적으로 변했다. 속도전이었다. 소비자 테스트조차 하지 않았다. 마르코 비자리 구치 CEO는 미국 패션일간지 WWD 인터뷰에서 “위험한 도전이 없다면 구치를 바꾸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치는 생산 공정부터 기업 문화까지 정말 모든 것을 바꾸려 했다. 상품 종류를 줄여 장인이 재량껏 일하도록 했다. 장인이 공들이는 제품으로 바뀌니 짝퉁이 나오기 어려워졌다. 비자리 CEO는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는 수평적 문화로 바꿨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브랜드 혁신은 상품과 마케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적 경영저널인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회사 자체가 독보적(distinctive)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품과 브랜드만 독보적이면 반짝 인기에 그친다는 얘기다.

10∼30대 중반의 밀레니얼 세대는 브랜드 충성도가 낮지만 기업 자체의 가치와 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다고 한다. 구치가 올해부터 동물 털 사용을 금지한 것도 기업 가치를 보여주려는 전략적 행보다. 상품을 넘어 기업 문화, 가치까지 바뀌어야 브랜드 혁신이 가능해진 시대다. ‘회춘 전략’은 더욱 도전적인 과제가 됐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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