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회식 대신 집에서 혼자… 불황이 낳은 음주 新풍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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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출고 업소용 줄고 가정용 늘어

직장인 음주문화 변화
회사원 차주형 씨(35)는 요즘 대형마트에 가면 장바구니에 항상 6캔들이 국산맥주 박스나 4캔에 1만 원짜리 수입 맥주 묶음을 담는다. 퇴근한 후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아내와 TV를 보며 맥주를 즐기기 때문이다. 차 씨가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그는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도 있어 동료들과의 회식을 1차까지만 하게 됐다”며 “자연스레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됐는데 술값 부담아 줄어서 좋다”고 말했다.

소비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직장인들의 음주문화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집에서 혼자, 또는 가족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케팅 인사이드는 29일 ‘집에서 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의 비율이 2010년 하반기(7∼12월) 33.6%에서 2014년 하반기 42.9%로 증가했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기간 동안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의 비율은 66.4%에서 57.1%로 줄었다. 이 조사는 전국의 만 20∼59세 남녀 1만6486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주류 업체들의 통계에서도 감지된다. 롯데주류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처럼’ 등 소주 제품의 가정용 출고량은 전체의 41.7%로 2011년(37.0%)보다 5%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반면 2011년 63.0%였던 업소용 소주 비중은 지난해 58.3%로 줄었다.

흥미로운 것은 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늘었지만, 전체 주류 소비량은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3년 국내의 주류 출고량(392만1000kL)은 2012년(393만7400kL)보다 소폭(0.4%) 줄었으나 2009년 출고량(363만6400kL)보다는 7.8% 늘어나는 등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류업계에서는 불황으로 돈을 아끼려 하지만 여전히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정록 한국주류산업협회 상무이사는 “상당수 직장인들이 돈을 아끼기 위해 회식을 1차만 하고 2, 3차는 자제한다”며 “대신 요즘엔 편의점과 대형마트의 가정용 소주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세븐일레븐이 발표한 지난해 품목별 매출액 순위에서는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소주(360mL)가 사상 처음으로 ‘만년 1위’였던 빙그레 바나나맛우유(240mL)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한편 집에서 술을 마시는 문화가 퍼지면서 음주에 대한 해석도 바뀌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음주가 회식이나 접대 등 공적인 영역에서 퇴근 후 혼자 음미하거나 가족과 함께 즐기는 사적인 행위가 되고 있다”며 “삶의 중심축이 집단에서 개인과 가족으로 바뀌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bsism@donga.com·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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