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투자 고용 모두 악화… 정부 낙관만 하다간 대응기회 놓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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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침체 초입’ 논쟁 가열

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현 경제 상황에 대해 엇갈린 진단을 내놓으면서 때 아닌 ‘경기 논쟁’이 불붙고 있다.

민간 경제학자들은 제조업 생산지표가 악화된 데다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경기의 둔화 추세가 뚜렷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경기 침체의 초입’ 진단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현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면서 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흘려보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경기 침체 초입” vs “6월에는 개선”

김 부의장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기 침체의 초입에 있다”는 글을 올린 데 이어 19일에는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의 칼럼을 게재했다. 기업의 실적과 투자, 소비심리가 모두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정부가 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신 교수의 글을 통해 우회적으로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17일 “경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특히 고용 상황이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시장이 예측한 당초 7월보다 훨씬 더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17일 “월별 통계만 갖고 (경기 침체 초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김 부의장의 말을 반박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현재의 경기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4월 월간 수출이 비록 18개월 만에 감소했지만 3, 4월 연속으로 수출 500억 달러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산업생산도 광공업 외 다른 산업은 회복세를 보인 점을 부각했다.

청와대는 정부의 ‘아킬레스건’ 격인 일자리가 부진한 현실에 대해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20일 반장식 대통령일자리수석은 기자간담회에서 “고용이 둔화된 건 작년 취업자 수 증가폭이 컸던 통계적 요인과 경제 성장이 반도체 등 수출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6월에는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 생산 투자 고용이 함께 둔화

민간 전문가들은 이미 현 경제 상황을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경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생산과 투자, 고용 둔화 등 각종 지표가 악화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산업생산은 2월보다 1.2% 줄며 2016년 1월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설비투자는 한 달 만에 7.8% 줄었다. 취업자 증가 폭은 3개월 연속 10만 명대다.

경제를 지탱해온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도 불안하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월간 수출통계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보다 10% 늘어나 세계 10대 수출국 중 8위를 차지했다. 주요 무역국 71개국 평균(13.8%)보다 낮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수출 증가율은 15.8%로 10대 수출국 중 1위였다.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외에는 사실상 성장이 정체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자동차, 조선 등 다른 업종은 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고용 창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LG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 연구기관들은 3월 투자 감소와 제조업 생산지표 악화, 수출 감소세 등을 위험 요인으로 제시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 호의적인 분석을 내놨던 외국인 투자가들의 시선도 바뀌고 있다. 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기술업종의 경기 사이클 둔화로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수출이 부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 한계 드러낸 소득주도성장 실험

지금 기업들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로 수출 장벽이 높아가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법인세율이 인상되고 고용 경직성은 심화되는 내우외환에 몰려 있다. 그 결과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고용이 부진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분배에 치중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험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정부 출범 1년 만에 각종 경기 지표가 악화됨에 따라 자칫 국정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최근 현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진행된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었다. 핵심 지표인 고용과 관련해선 김 부총리조차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과 임금에 영향이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정부가 경제 현상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함에 따라 잘못된 정책을 조정하거나 효과가 검증된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힘든 지경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는 게 분명한 만큼 정부가 경제 주체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검토해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 / 세종=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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